가을밤, 모기를 만나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그렇게 치열해보았느냐

by 민호

나는 직장인이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하고 운 좋게 6시 30쯤 지하철을 타면 7시에는 집에 온다. 요새는 테니스에 빠져 있어 밥 먹고 나면 (좀비처럼) 밤 10시 혹은 11시에 테니스를 치러 간다. 더 일찍 가고 싶지만 테니스는 코트 예약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 11시 30 혹은 12시에 집에 오는 날이면 모든 긴장에서 해방된다. 긴장에서 해방되고 동시에 나는 가장 연약해진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몸은 노곤노곤해지고 정신은 이미 유튜브를 좀 보다가 자는 것 (+가끔 야식) 외에는 그 무엇도 관심에 두지 않게 된다. 한 번은 씻고 나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난 다음에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잠시 누웠는데 그만 다시 일어나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머리는 말려야 하는데도! 잠옷은 입어야 하는데도! 신기하게도 손은 움직여서 어느새 휴대폰을 잡고 만다. 그리고 이제 알고리즘에 따라 나는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이다. 약 일 년 간 보지 못했던 그가 왔다. 한창 더운 이번 여름에 오지 않길래 나는 그가 이미 더 먹을 게 많은 옆 나라로 이민 간 줄 알았거늘. 여름에 나는 그를 제압하기 위한 모든 장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다. 침대에 드리운 커다란 망은 내 성벽이요, 스프레이로 된 살포제는 나의 대포였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는데... 그는 그때 찾아오지 않았다. 여름이 끝나가는데도 한 번도 오지 않아 나는 그가 이민을 갔다고 단언하고 의기양양하게 망을 해체했다. 스프레이는 도로 장롱 어디 깊숙한 곳에 들어가 버렸다. "이제 평화의 시대다!!" 약간의 불편함마저 해체된 나의 방은 이제 행복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찾아왔다. 그것도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그는 이민을 간 것이 아니고 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도 정확한 때를 골랐다. 마치 재작년에 엔비디아에 투자한 내 친구처럼! 그는 내가 가장 무기력할 때, 가장 대비가 안 돼 있을 때를 정확하게 골라 등장하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 유튜브를 볼 뿐이다. 그러다가 그가 내는 전투의 함성이 귀에 꽂히는 때면 결국에 시선은 휴대폰에서 멀어진다. 우선은 방 안의 유일한 광원인 형광등을 보고 고개를 돌려 방 내부를 찬찬히 훑어본다. 하지만 그는 영악하다. 이미 눈으로는 좇아갈 수 없다. 그는 어디선가 이미 위장을 하고 있다. 마치 방 안의 어느 부품인 마냥! 그가 왔을 때와 비교하여 방 안이 변함없는 상태인 것처럼 나를 기만하는 것이다. 훌륭한 전술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체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분명히 계속해서 날고 있지 않다. 또한 언제든 나를 공격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는 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침대의 프레임부터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겠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더듬거려도 그가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이래서는 효과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은 일어난다. 그러나 아까 전에 그렇게 활발하게 나를 공격하던 그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맞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문득 이 정도면 모기도 지쳐서 오늘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하지만 평화가 깨지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는 적당한 때를 기다렸을 뿐, 조금도 이득을 취하는 것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분기탱천하여 스프레이를 꺼내 온다. 냄새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전방위로 스프레이를 살포한다. 잘 싸웠지만 그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 그가 전투에서 패배하고 나는 승리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의기양양한 채로 자리에 누웠다. 냄새 때문에 불편하고 잠자리를 뒤척였지만 그래도 승리했다는 안도감에 만족했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영악하게도 나에게서 양식을 취하였다. 생각해 보건대 그가 다시 살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면 그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죽더라도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 결국 나는 나의 것을 내어 주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록 전투에서는 승리했을지언정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나는 비로소 이를 깨닫고 상대가 비록 미물이지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누군가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으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하였다. 오늘밤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까닭은 내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그렇게 치열해보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문학의 상업화를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