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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쓴글 Oct 14. 2024

문득, 생각난 것들

꽃을 담아가는 사람들

길을 걸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날이 좋아서인지 꽃이 참 많이도 폈다.

길에는 이름 모를 꽃이지만,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한참을 찍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본인이 가장 자주 려다 보는 본인의 세상에 길가에 피어난 꽃을 담아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같이 걷던 이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왜 꽃을 좋아할까?”     


...     


아직 철없던 시절 나에게 꽃은 그냥 풀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니 꽃이라 부를 뿐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동백나무가 있었다.

때가 되면 화사한 빨간 꽃을 피우고는 했었다.

그 외에도 넓지 않은 마당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피어나고는 했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은 나의 관심 밖에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거리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도 예쁘게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마당의 꽃들도 참 예쁘게 피었겠구나 싶은 것이다.

꽃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서는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그러고는 궁금증이 올라온다.

나이가 들수록 꽃에 애정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흔들이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中」


맞는 말이다.

온갖 시련을 견디고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온도, 햇빛, 영양 어느 하나 모자람이 있다면 피어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한 피워냄이다.

이는 곧 이 생명의 이어 감이다.

꽃이 피어남으로써 다음이 있는 것이다.

온몸을 흔들고 비틀어 전력을 다해야만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생의 손님이 찾아온다.

그때 꽃은 본인의 과업을 다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다음을 기약하며 장렬하게 으스러지는 것이다.

    

사람의 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시련의 연속이다.

온몸을 흔들고 머리를 감싸며 생을 살아가다 보면 화려하게 빛나는 삶도 찾아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은 곧 쌓여온 선택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게 이어진 삶은 곧 생명이고 나 자신이다.

온몸을 흔들며 아름다움을 피워낸 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그런 것이다.

어쩌면 생명에 대한 찬사.

온 힘을 다해 살아온 우리의 삶에 대한 찬사.


꽃을 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꽃을 담아가는 날이 올지 생각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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