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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serin Oct 18. 2024

나는 그동안 내 삶에 대해 지나치게 졸렬했다

그믐날의 사색

  한 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으나 어느새 절반을 지나 9월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솔직히 말해서 난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적이 있었나?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남들보다 딱히 잘난 거도 없어 보이면서 가지려는 것은 많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눈을 감아버리는 거지.’ 얼마나 회의적인가. ‘그래, 인생이 다 그런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 ’ 안다. 이건 기만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누가 봐도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멍청하다고는 하면서 정작 내 인생이 어떤지는 모른다. 인정한다. 난 늘 모순적이었다.


  나는 매사에 무덤덤하고 세상사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평소의 나는 감상과 유치함에 대해 과감하게 적대적이었으니까. 하여 술자리에서 거하게 취한 친구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괴로워할 때도 내가 크게 아쉽다거나 괴로운 느낌은 든 적이 없었다. 어차피 아직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꽤 시간이 많았고 무엇보다 이 불확실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웠으니. 정말이지 끔찍한 시간낭비였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야 할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몇 해전만 해도 방황하던 친구들이 자세를 가다듬고 바지런히 자신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에 나도 가만히 누워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하였다. 미칠 듯이 갈망하고 나 자신을 깎아가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나.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으로 허한 감정의 절망감을 느꼈다. 내 인생에는 양감(量感)이 없다. 삶의 부피는 너무도 얇아서 작은 씨앗 한 알 심을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 일가 하는 불안감은 마침내 마음자리에 홍수를 내버려서 며칠 동안이나 이 불안감의 부르짖음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독한 무기력에 잠식당한 듯한 그 밤들은 내 삶을 침체의 늪에 빠져버리게 충분했다. 스멀스멀 피여 오르는 내 삶에 대한 불안감은 오래전부터 아주 조금씩, 마치 실금이 간 항아리에서 물이 새듯 그렇게 내 마음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 불순한 것들이 내 마음을 익사시키기 전에 어서 다 떨쳐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마침내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뭐라도 하면 된다. 회피형 인간이 아니라 용감히 맞서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했다. 내 미래에 도움 될만한 어떤 것, 뭐 자격증이라던가. 이 빌어먹을 무기력을 이젠 털고 일어나야 된다.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사이로 흘려보내고 있는 나부터 바로잡기로 한다. 눈을 감아 자유로운 내 미래를 꿈꾸어보았다. 실제적으로 보이는 영상은 아니더라도 훗날 어딘가에 있을 나의 어떠한 모습, 그것만으로도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눅잦힐수가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책을 읽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것. 여태껏 한심한 삶을 살아왔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책이었다. 지어 어릴 적에는 나도 이런 책을 써야지 하고 막연히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다. 막연한 꿈. 나도 될 수 있을까. 막연히 걱정만 하다 이루지 못했던 꿈.


  이제라도 책상 앞에 앉아 정성껏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내 진정한 생각과 솔직한 감정들을 적기로 결심했다. 이루지 못해도 상관없다. 이제부터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 떠날 때 후회 없이 살았노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일분일초를 꽉꽉 채워 넣어야 한다.


  내 삶은 내가 이끌고 나아가 는 것이지 환경이 바뀌었다고 하여 제자리에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고 또 되어가는대로 놓아두어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하여 나는 이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느끼는 일종 쾌락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인생의 양감을 채우기로 한다. 열심히 달려서 성취해 낼 성과나 달리다 넘어져도 거뜬히 일어나서 꿈을 위해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 그 뜨겁고 열렬한 감정은 얼마나 큰 쾌락일가. 이러한 쾌락은 무덤덤하고 시큰둥한 나를 정열로 끓어 번지는 빛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믐날의 사색은 나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식의 격렬한 자기반성은 필요 없다. 나 스스로의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며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대로 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이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서라도 탐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무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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