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삶 에필로그
나는 김느긋이다. 필명과 다르게 마음을 바쁘게 살아왔지만, 느긋하게 살아가고픈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먼저, 내가 왜 김느긋이라고 필명을 짓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느긋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마음에 흡족하여 여유가 있고 넉넉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마음에 흡족한 삶은 못살고 있지만, 여유만 있는 사람인 것 같다. 하하
또 하나의 의미로 내가 생각한 것은 나의 살아가는 '느'낌을 하나의 글로 '긋'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가 살아가면서 생각하게 된 나의 가치관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김느긋의 짤막한 인생을 들려주겠다. 나는 빠른 생일의 비운을 가지고 태어난 키가 작은 아이였다. 빠른 연생은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발달이 늦다 보니 남들보다 왜소했고, 달리기도 느리다고 믿고 자라왔자만, 성인이 되어서도 작은 것으로 보아 유전적으로 작은 아이였다. 그리고 빠른 연생들이라면 매년 듣는 말이 있다. '지 유리할 때만 빠른 이네.' 참 억울한 말이다. 내가 결정할 수 없을 때(대부분 부모님이 결정해 주신다.) 한 학년 빨리 학교에 입학했을 뿐인데, 유교 문화에 반하는 사람이 되어있더란다.
그러다 보니 악착같은 면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빠른 연생이라서, 혹은 작은 아이라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기질상 싸움은 잘 못하니, 뭔가 보여주기에는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파일럿을 꿈꿨다. 제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는 사람들로 보여서 그런지 멋있어 보였나보다.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때는 열심히 축구하면서 뛰어놀았고, 중학교 때는 농구하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보내주신 종합학원에서 공부에 대한 흥미를 가졌고,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5등까지 등수를 올렸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좋아하던 게임도 안 하고 꽤나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비록 원하는 내신점수는 아니었지만, 수능만을 준비하던 나는 원하는 수도권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만 들어가면 끝일 줄 알았나 보다. 대학에서는 진짜 원 없이 놀았던 것 같다. 술은 안 좋아하다 보니 술담배는 안 했지만, 대학 로망을 누리기 위해 잔디광장에서 기타 치며 누워있기도 해 보고, 출석만 하고 서울구경하러 도망도 다니고, 편의점 알바생에게 호감이 있어 번호를 따려 시도도 해보고(안타깝게 남자친구가 있었다.), 동아리 사람들과 여행도 가고, 학생회관 뒤편 공터에서 친구들과 삼겹살도 구워 먹기도 하고, 대학교 체육대회에서 과대표 탁구대회도 나가보고(2차전에서 탈락했다.) 진짜 최선을 다해 놀았다.
그러다 보니 학고도 맞아보고, 지도교수님에게 핀잔도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대학생활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동기들이 지원하는 이름 있는 기업에는 접수도 못해보고 도망치듯 작은 기업으로 취업했다.
그래도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생겼고, 서로를 의지하며 작게 시작해 보자고 하면서 용기를 내준 사람과 결혼하여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놀았고, 남들을 부러워했으며, 갓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의 삶이다. 그저 평범한 삶이기에 재미조차 없을 그러한 삶이지만, 나의 삶에는 행복만은 남아있다. 미세한 월급과 서울에 입성하지 못한 전셋집에서도 나에게는 행복한 이유를 준다.
아주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김느긋의 삶이지만, 느긋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 한 켠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