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누나 유치원 보내기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의 순간은, 따스한 햇빛이 아파트 창문을 비추던 아침이었다. 나는 겨우 세 살, 아직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이였지만, 그날만큼은 모든 것이 또렷이 기억난다. 아파트 1층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 풍경 속을 천천히 걸어가던 다섯 살 누나의 모습이.
엄마와 나는 나란히 창문에 서 있었다.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도 누나가 유치원에 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불안해할까 봐 엄마는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을 것이다. 누나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그 색은 아침 햇살과 어우러져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유니폼이 정말로 노란색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덧칠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사택 단지의 좁은 길이었다. 누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그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묵묵히 그 장면을 바라봤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저 창문 밖으로 나가는 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딸이 혼자 유치원까지 잘 걸어갈 수 있을지 걱정했을 것이고, 동시에 점점 자라나는 아이의 독립성을 보며 대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가족은 경북 울진의 작은 사택 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기 회사에 다니셨고, 사택 단지 안에는 같은 회사 사람들의 가족들이 모여 살았다. 이웃들도 비슷한 풍경을 매일 아침 마주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어린이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그 시절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무사히 길을 건너고, 안전하게 어린이집에 도착할 거라 믿었을 것이다.
작별의 순간
누나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그녀의 작은 뒷모습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누나가 멀어질수록 내 마음속에는 묘한 감정이 자리 잡았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이별'이라는 감정을 체험한 순간일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누나가 내 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모습은 나에게 낯선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불안감 속에는 또 다른 감정, 어쩌면 흥미와 설렘이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나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 길은 꽃동산 어린이집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성인이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다섯 살짜리 어린이에게는 꽤나 먼 길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를 혼자 등원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때는 사택 단지의 모든 아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유치원에 갔다.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사람들의 신뢰 덕분에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 역시 혼자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창문에서 지켜봤을까? 아니면 이제 익숙해진 일상이라 나를 보내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받아들이며, 특별할 것 없는 등원을 반복했다. 유치원이 방학을 하면, 우리는 유치원 옆에 있던 단지 내 야외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곤 했다. 매일 그 수영장이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는 한없이 자유로웠다.
그때는 단지의 안전함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고, 아이들은 사택 단지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그 믿음은 단지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택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준 것이다.
마무리
돌아보면, 그 시절의 풍경은 단순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지금, 그때의 기억들은 나에게 소중한 의미로 남아 있다. 누나가 처음 혼자 길을 걷던 날, 그 장면은 내 마음속 깊이 새겨졌고, 그 기억 속에 담긴 따스함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