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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작가 Nov 08. 2024

시골 촌년이 세계 여행을 떠나다,

세계...여행...? 그것이 뭐대요...?

내 나이는 사십 대 중반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호랑이도 맨 나중에 사라졌다고 말하는 시골 깡촌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논밭 뿐이었고 먼지 나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 학교를 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여기저기서 나타나 신나게 뛰어다녔을 덩치 큰 개구리들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곳곳에 터져 있었고 그 표현 못할 비릿한 냄새에 코를 막으며 원치 않게 내 시야에 자동으로 들어와버리는 그 시체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안전한 곳으로 돌리느라 애를 쓰며 똑바로 걷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드디어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날은 어릴 적 내 기억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채점을 하는데 나는 곧 서울 간다는 생각에 시험지에서는 소낙비가 내려도 내 마음은 왜 그렇게 맑고 기쁘고 설레던지...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4년 후 아빠의 사업이 부도가 났고 나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 깡촌으로 할머니, 언니와 다시 가서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내 어린 시절 중 가장 슬픈 날이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비워져 마당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내 허리까지 자라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잡초들이 마치 나를 영원히 그 집에 가두려고 기다리고 있는 저승사자들 같았다. 

차라리 서울 물을 마시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까, 몇 년 서울 물 마셨다고 다시 돌아간 그 곳은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절망으로 다가왔다. 한창 예민한 나이였을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초등학교 시절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과 중학생이 되어 다시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다시 여기로 전학을 왔는 지가 너무나 궁금했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복도 창문으로 몰려와 마치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를 바라보듯이 쳐다보며 수근댔는데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수업이 끝나면 나는 바로 책상에 엎드려 그 다음 수업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거나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면 나의 자존심이 덜 상했을 텐데 하필 그 동네로 다시 가는 바람에 나의 자존감 또한 완전 바닥을 쳐 버렸다. 하루 빨리 그 동네를 벗어나는 것이 내 마음의 가장 큰 소원이었고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바람을 속으로 자주 기도했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서울 부모님 집에 가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 집에도 가서 자고, 나를 많이 아껴주셨던 중학교 선생님도 만났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다시 시골로 돌아오는 날에는 온 몸은 기운이 빠지는데 내 정신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있는 힘을 다해 안 따라가려고 버티는 것처럼 현실을 부정해보려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현실을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은 그 시점에는 거꾸로 '그래, 나는 지금 방학이라 시골에 놀러 온 거야. 이 방학이 끝나면 다시 서울로 갈 거야!'라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것 말고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학창 시절의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 고등학교 졸업 후 결국 나는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다. 마치 원래 그렇게 하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나는 25살에 첫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5살, 3살, 1살... 시댁이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단 하루의 도움도 없이 나의 2, 30대를 정신없이 애만 키웠던 것 같다. 

외벌이 신랑의 수입도 뻔했고, 아들 둘이 주말에는 축구 경기가 있어 시간이 없기도 했기에 가족끼리 어디 여행 한 번을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었다. 

큰 아이가 11살, 둘째가 9살, 막내가 7살이 되던 그 해, 결혼 10년 만에 우리는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다. 물론 대출을 왕창 받아서...

이사를 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3월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려던 신랑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식탁에 잠깐 앉아보라고 한다. 


"우리 세계 여행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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