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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그냥 글이 써졌어

by 민창

모두가 퇴근하는 오후 7시.

입추(立秋)가 지나서 그런가 해가 짧아진 느낌이 든다.

아직은 여전히 덥지만, 그나마 더위가 한풀 꺾여 저녁이 되니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분다.

오늘도 긴 하루였어. 하루를 조금이나마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전철역으로 걸음을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나에게 건네는 처서(處暑)의 기분좋은 가을 바람의 선물. 바람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그 곳엔 야경을 품고 있는 한강 공원이 있었다.


잠깐만 쉬다 갈까


귀에 꽃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주머니에 넣는다.

시끄러웠던 내 하루에 멈춤을 잠시 선물한다.

맞다, 가을 바람을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네게도 가을이 찾아왔을까.

높아진 하늘과 가을 구름을 눈에 담는 걸 좋아한다고 해줬는데,

너는 오늘 하늘과 구름을 눈에 담았을까.


처음엔 계절이 나에게 쉼을 건넨 줄 알았는데,

처서의 바람이 내 어깨의 힘을 풀어 준다고 믿었는데.

그런데 조금 더 서 있다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바람의 온도는 계절만의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안에 남겨둔 계절에서 불어오는 건 아닐까.

오늘 내 숨을 고르게 만든 건 저녁 공원 잔디의 초록이나 물빛의 반짝임만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나에게 찾아온 고마운 쉼의 기억은

공원의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고 네 이름으로 기억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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