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인사이트트 Oct 25. 2024

듀오에서 결혼한 사람이야기 #9

세 번째 남자: 9급 공무원 모군

모군은 다정했다. 


머리가 아프면 약을 사다 주고, 추울 때는 코트를 벗어주는 그럼 사람이었다. 그런 다정한 모습은 탈모라는 장벽을 넘게 하는 그의 큰 매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바위 틈새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바위를 깨트리듯, 탈모라는 금으로 생긴 사랑의 바위가 작은 것들이 쌓이면서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하이패스 차로로 진입하다 깜짝 놀라서 우회전하며 사고가 뻔한 적도 있었다.


"오빠는 왜 하이패스가 없어? 그냥 하나 만들어"


"엄마한테 말해볼게."


몇 번이고 고속도로에서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아, 매번 요금을 내기 위해 정차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빠는 왜 디젤차 타?"


"디젤이 주유비가 더 싸서?"


"그럼 주유할인 되는 카드도 써?"


"아니?"


(띠용) 


착실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던 모군의 환상이 지지직 하고 깨졌다.


"주유비가 더 싸서 디젤차 끌면 주유할인 되는 카드 좀 써보지 그래?"


"엄마한테 말해볼게"


코골이가 심해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자기와 다들 같은 방을 쓰기 싫어한다던 모군.


"오빠 그럼 코골이 수술 한 번 받아봐"


"엄마한테 말해볼게"


그놈의 엄마, 엄마, 엄마!!!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 왜 엄마를 찾는 걸까?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왜 없는 걸까? 그의 다정함이 점점 답답함으로 변해갔다. 


우선은 덮어두자. 다 생각이 있겠지.


그러다 내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의 세금 문제로 머리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많이 지쳐 있었고, 차갑게 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모군은 이렇게 말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답답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남편이 될 사람이라면 서로가 가진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모군과 결혼한다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나 혼자만 헤쳐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이패스 카드 내가 만들기.


주유할인 카드 찾아서 내가 만들기.


코골이 수술하는 곳 내가 찾아보기.


부동산 세금 내가 찾아보기.


모두. 다. 나 혼자서.


모군은 정말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정함만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실행력이 부족한 다정함, 그것이 모군과 나의 관계를 끝내게 한 이유였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났다.


함께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 다음 만난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다음화를 기대해 보시라!)



모군과의 일화는 여기서 끝난 줄 알았는데 최근에 다시 시작됐어요. 

아니 남편친구 여동생(A양)의 소개팅자리에 모군이 나갔다는 거 아니겠어요?


모군이랑 헤어진 지 3년은 넘은 거 같은데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다니.


조금 안타까우면서도 왠지 다른 여자들도 나랑 같은 이유로 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A양과의 소개팅일화를 들어보니, 저와 만났을 때처럼 매너는 좋았지만 어딘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모군..! 좋은 여자 만나서 빨리 결혼하길 바랄게.


이 글은 보지 말아 줘.....

매거진의 이전글 듀오에서 결혼한 사람이야기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