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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인사이트트 Nov 03. 2024

신데렐라가 맞선 결혼한 거라고?

신데렐라 그건 낭만적 사랑이 아니다

듀오를 통해 결혼 상대를 찾으면서 신기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상대가 나 외에 다른 맞선 상대를 만났다는 사실에도 전혀 배신감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이 된 곰돌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주말,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A도시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맞선 보러 갔음을 알았다. 그 역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맞선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사히 결혼에 골인했다.


우리 부모님 또한 맞선으로 결혼하셨다. 엄마는 아빠가 여러 맞선 상대를 만난 사실을 알았음에도 개의치 않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할머니는 다른 후보를 추천했지만, 아빠는 엄마와의 결혼을 고집하셨다. 맞선 문화에서는 여러 명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걸까?


여기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당신이 쿨한 성격이라서 그런 건 아니야?’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소개팅을 했을 때는 여러 명 소개팅하는 남자는  “간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정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왜 맞선에서는 다중 만남에 불쾌감이 없었을까? 맞선과 연애 그 문화적 차이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드라마 혼례대첩 포스터


닫힌 결말 맞선, 열린 결말 연애

맞선과 연애의 다중 만남에 대한 인식 차이는, 그 결말 닫혔는지 열렸는지에서 비롯된다. 박문수의 ‘중매담’ 연구 논문에서는 맞선 결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인일혼’ 형에서는 혼처를 찾지 못한 총각이 중매가 정해준 처녀에게 군말 없이 장가들고, ‘일일이혼’ 형에서는 부친이 정해준 처녀와 혼인하게 된다. 즉, 맞선의 결말은 ‘결혼’이다. 맞선은 누군가 적절한 상대라고 이어주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반영된 방식이다.


맞선에서 상대가 다른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혹은 "배우자를 신중히 고르는구나"로 받아들여진다. 여러 후보 중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그가 나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욱이,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중매 한방으로' 결정해야 하기에, 현실적 조건을 신중히 따지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맞선의 경우 과거에는 상대 집안의 사회적 지위까지 철저히 조사했고, 집안의 배경과 사회적 조건이 혼인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현대에도 맞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연애 결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금이지만, 결혼을 가문 간의 결합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연애는 낭만적 사랑이다

반면, 연애는 결혼을 반드시 염두에 두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의 감정적 교류와 경험이 중요하다. 열린 결말을 가진 연애는 맞선과 달리 감정과 설렘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기도 하며, 조건보다 그 순간의 감정적 연결을 중요시한다. 상대방의 사회적 조건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작되는 것이 연애의 본질이다. 그래서 연애에서 상대가 나 외의 사람과도 소개팅을 한다면 왠지 거부감이 든다.  '나만'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끌렸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감정이 배신감인지 수치심인지 분간은 어렵지만.


강진웅의 ‘한국 사회의 낭만적 사랑 담론과 그 전개’ 논문에서도, 낭만적 사랑이 사랑-결혼-가족의 틀 속에서 남녀의 불안정한 합일을 제도적으로 안착시킨 역사적 결과라고 설명한다. 연애는 낭만이다.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더 매력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맥락을 짚어보니 신데렐라는 낭만적 사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낭만적인 사랑이라면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가 맞을 테니까.



신데렐라도 맞선 결혼한 거다!

 앤더슨(Anne Anderson, 1874~1930)의 삽화 @나무위키 신데렐라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형적인 맞선 결혼의 틀과 흡사하다. 왕자가 신붓감을 찾기 위해 무도회를 개최하고, 왕국 내 모든 미혼 여성을 초대해 상대를 찾으려 했던 것도 하나의 맞선 자리와 같다. 이 무도회는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왕비가 될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왕실의 신붓감 찾기는 적합한 조건을 갖춘 여성을 고르는 과정이었고, 왕자의 선택도 궁극적으로 왕비가 될 인물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화려한 드레스와 금빛 신발로 왕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단순한 낭만적 만남이 아니라 그녀가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상대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왕자 역시 신데렐라의 조건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녀를 다른 이웃 나라의 공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왕자가 신발을 단서로 그녀를 찾으러 다니는 과정도 전통적 맞선의 과정을 반영한다. 그는 금빛 신발이 맞는 여성을 찾으면서 자신이 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여성을 찾고자 했다. 이는 조건과 배경을 맞춘 전형적 혼인의 형태로, 연애적 감정보다는 결혼의 확고한 조건을 중시한 맞선의 이상적인 형태와 일치한다.


흥미로운 점은 큰언니와 새엄마의 모습이다. 신데렐라가 남긴 신발을 맞추기 위해 큰언니는 엄지발가락을 자르기까지 하며 억지로 신발을 신었다. 새엄마 또한 이를 종용했는데, 이는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신체적 희생까지 감수하려는 모습을 통해 맞선 결혼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다시말해 결혼 상대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자신을 맞추려는 큰언니의 모습은, 결혼이라는 목표 아래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당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왕자와 신데렐라는 결혼이라는 닫힌 결말을 맞이한다. 이 결말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단순한 연애 결혼이 아닌, 사회적 조건과 배경이 맞아떨어지는 맞선 결혼의 이야기임을 시사한다.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하버드대 로버트 엡스타인 박사에 따르면 '결혼 후 5년이 지나면 중매결혼 부부의 애정이 연애결혼을 능가하고 10년이 지나면 애정 강도가 연애결혼 부부보다 2배로 커진다'라고 합니다. 왕자는 신데렐라가 기대한 만큼 재력 있는 집 딸은 아니더라도 조건이 맞으니까 잘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니도 그냥 데려갈려고 했잖아?)


제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중매결혼한 저. 행복하냐고요? 뭐. 낭만은 없습니다. 연애결혼한 남편들과 비교해 보면 정말 다정하지 않습니다. 이벤트 같은 건 꿈도 못 꾸고요. 깜짝선물, 깜짝데이트는 여태껏 해본적도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한테 투정 부려 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이 뭔 줄 아세요?


"니 신랑이 다정하기까지 했어 봐, 너 차례까지 왔겠니?"


오. 우문현답입니다 어머니!


저의 이성으로 선택한 사람이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성으로 컨트롤합니다.

이것이 ㅗ낭만 없는 결혼ㅗ이니까요



참고문헌  

강진웅. (2023). 한국 사회의 낭만적 사랑 담론과 그 전개. 문화와 정치, 10(3), 33-68.

Giddens, A. (1992). The Transformation of Intimacy: Sexuality, Love, and Eroticism in Modern Societies. Stanford University Press.

Beauvoir, S. de. (1989). The Second Sex. Vintage Books.

이영수. (2017). 박문수 ‘중매담’ 연구. 비교민속학, 63, 26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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