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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비행사 Nov 18. 2024

다정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는 이유.

다정한 사람을 지켜라


나의 친구 A는 다정한 사람이다.


나의 아주 작은 감정에도 그녀는 따뜻하고 섬세하게 반응해 준다.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가끔 내가 먹고 있는 것이 음식인지 그녀의 다정함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고기도 좀 먹어보면 어때? 계속 야채만 먹고 있는 것 같아. “

”내가 그랬나? 고마워. 너도 얼른 먹어.”

“고기가 좀 질겨서 그래? 그럼 조금만 먹고 다른 데 가서 디저트를 먹을까? “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말하기 전에, 심지어 내 스스로도 ‘고기가 질기군-’이라고 느끼기 전에, 그녀는 나를 읽어낸다. 그리고는 내가 가장 좋아할 결말을 내 앞에 조용히 꺼내 놓는다.


천성적으로 다정함이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내가,

그녀의 다정함으로 빚어진 우정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할 법한 순간에도 A는 늘 우아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커피가 싫어.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라고 실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제가 커피맛엔 젬병인지라 핫초코를 마실게요. “라고 말할 줄 안다.


그녀의 말은 뇌에서 입으로 나오는 과정 어딘가에 ’ 다정한 말투‘ 필터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A의 공감 능력과 다정함은 상담이 주요 직무인 그녀의 직업에서도 두드러졌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기에 업무 성과도 뛰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가장 힘들다는데,

어떤 사람들은 예쁘게 말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데,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눈치가 없어 사회생활이 그렇게 힘들다는데, A는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냈고 늘 유능했다.


이런 A의 곁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녀의 일도 연봉도 날로 늘었다.


‘다음생엔 A처럼 태어나게 해주세요. 다정함을 배울 필요도 없고, 우아함을 타고난 그런 사람으로요.‘ 가끔 난 이렇게 기도했다.


그러던 얼마 전,  A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꺼낸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나,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전직할까 생각 중이야.. 그리고, 당분간 쉴 거야…”

“어머… 정말이야? 무슨 일 있어? “

”딱히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내가 이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과는 좋아도 감정소모가 너무 커서 힘들어... 사실, 요즘 우울증 치료도 받고 있어…”

“…!”


A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자신의 타고난 예민함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상대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읽어내고, 그 감정에 동화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은 나만 생각해야지, 내가 원하는 대로 즐겨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정신을 차려 보면 상대방 기분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감정 소모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는 매사에 무덤덤한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나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덤덤하게 괜찮다 해줄 것 같아 털어놓는다고 덧붙였다.


A의 다정함은 그녀의 예민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남들보다 늘 많았다. 과하게 많았다. 상대방의 눈썹 각도, 미간의 찡그림, 손의 떨림, 붉어진 피부색, 호흡의 빈도, 말의 속도 변화 등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남들보다 더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순간마다 상대방으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눈덩이처럼 커져 그녀를 덮쳤다.


십여 년을 알고 지냈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진솔하게 쏟아내는 모습은 그날 처음 보았다.


사람의 행복은 대부분 ‘관계’에서 온다고 한다.


그녀의 다정함은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너의 예민함이었을까?

너의 다정함이었을까?


너의 마음을 갈아 만든 다정함에 그저 기뻐하며 당연하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너의 다정함은 네게도 필요한 다정함이었구나.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네만큼 다정하지 못했구나.


A는 휴식기에 들어갔다.

아마 지금 그녀는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정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꾸 줄어드는 건,

다정한 마음을 돌려받지 못해 상처가 쌓이고,

깊은 회의감에 빠져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한 채 숨어버려서일까?


다정함은 혼자서 유지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서로가 다정함을 주고받을 때에야 비로소 그 마음은 지치지 않고 오래 이어진다. 문제는, 늘 덜 다정한 사람은 이런 사실을 깨닫는 데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나처럼.


그래서 안부를 묻습니다.


세상에 다정했을 당신, 아니 어쩌면 남들보다 예민했을당신은 지금 안녕한가요? 괜찮은가요? 당신이 있어 내 인생이 조금 더 따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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