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아버지의 출신 대학교보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전액은 아니지만 장학금도 받았다. 남은 돈은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통해 충당했다. 나만의 집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또래보다 많은 주택청약 자금을 일찍부터 모아뒀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 아버지는 새로이 직장을 구했다. 생활이 안정되자 이전의 자신이 부끄러운지, 잊고 싶은지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종종 '그때'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용돈을 건네왔지만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짜로 철저히 의도를 갖고 '무시'했으나 또다시 집안을 뒤집어엎지는 않았다.
나는 폭력이 뒤따르지 않는 것에 속으로 몰래 안도하면서 달라진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권위, 경제력에 갖는 집착을 눈치채고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관찰하다 보니 자존심과 자존감의 불균형도 어디서부터 오는지도 차츰 깨달았다.
용서와 공감은 하지 못해도, 이유 없이 맞이했던 폭력의 출처와 근거를 이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폭력의 '기승전결'을 파악하고 나서야 남들에게 내가 당했던 일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이야기를 꺼낼 때 울컥하기도했지만, 피해 사실을 공유하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상처를 담담히 꺼낼 수 있을 즈음에는 답답했던 응어리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는 이미 마음속에서 연을 끊었기에 누워서 침 뱉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홀로 당당히 이겨낸 자이고, 그런 내가 자랑스러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즐거운 학부 생활을 보냈다.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시달리는 약자들,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학내 언론인이 되었고, 구조적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인권 운동가도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욱 복잡하고 진지한 사건들을 마주할 때 당당할 수 있도록 사회 이론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비슷한 길을 걸어 폭력의 근본 고리를 끊을 것이라 원대한 포부도 품었다.
자신감과 호승심으로 살아왔던 나는 이제 없다. 우울증에 허덕이고 있으면서, 병원비 한 푼을 아까워하는대학원생만이 남았다. 정당한 '피해보상금'이라며 나를 달래고 '그날'에 대한 사과와 인정이 빠진, 용돈과 화해의 손길을 받아들일까 고민한다. 동시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혼자만의 고민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 마음 아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