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현 Oct 21. 2024

내가 우울증이라고? 불건강한 ENTP

나의 이야기

    예전부터 나는 'ENTP의 전형'으로 평가받아왔다. 지금처럼 MBTI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온갖 흥미 있어 보이는 일은 저지르고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학교 '등록금 본전 뽑기'였다. 장학금을 일부 받기는 했지만 체감상 전공에 한 푼 투자하지 않는 듯한 학교 본부에 내는 등록금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이 차단하는, 끊임없이 날아오는 학교 메일과 문자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덕분에 참여자들이 거의 없는 교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하며 스펙을 채우기도 했다.


학교의 여러 지원 혜택을 챙기기 위한 또다른 노력 중 하나로는 교내 상담센터에서 온갖 심리검사 받아보기-도 있었다. 즉, 인터넷에 떠도는 비공식적인 검사 말고 일찍이 공식적인 검사로 ENTP라고 진단을 받았다. 이외에도 TCI, 직업적성검사, AMT 여러 검사를 하였으나 모든 결과가 극 ENTP를 다른 언어로 설명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특히 N T P 지수의 경우 90 내외 점수로 엄청난 극단에 달했다.

     

 그리고 다능인의 대표 ENTP 답게 흥미 있어 보이는 다양한 활동들에 끊임없이 발 담갔고, 모든 활동이 적당히 성과를 거두었다. ENTP의 대표 연예인들이 한 말 중 제일 공감가는 말이 있다. 정확한 문구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대충 뉘앙스는 다음과 같았다.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넘어질 만큼 힘차게 달려본 적이 없어서"


재밌어 보이는 게 많다고 해서 한 우물을 진득하게 파고 싶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애정이 가는 분야는 물론 있었고 그 분야에서 모두가 우러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 한눈을 팔게 된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반적으로 잘하는 게 많지만, 개별 분야로 평가 항목을 좁히면 조금 더 정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턱대고 잘난 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모자란 점도 파악하고 있고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자타공인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몰입의 즐거움을 알았던 건강한 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중요한 업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수많은 아이디어와 자료조사를 산발적으로 떠올리기만 하고 하나로 엮지 못했다. 벼락치기의 압박감 속의 능률을 즐기던 나는,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없어 미칠듯한 불안에 시달렸다. 온갖 진상과 사이비들을 상대하며 도파민을 즐겼지만, 이제는 고작 내 행동의 결과를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주변 사람에게서 도망쳤다.


무기력함과 지나친 불안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무너져 있던 것을 몰랐다. 겨우겨우 상담 치료를 시작했으나 번아웃을 토로하기에는 앞서 말했듯 열심히 달린 것 같지 않았다. 언제, 왜, 이렇게 되어있는지 스스로 답할 수 없으니 담당 의사에게 무엇을 털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도파민 중독과 무기력, 수면 장애 등 당장의 증상에 대한 표면적 치료만 이어간 지 1년째,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는 잃어버린 삶의 통제력을 찾고자 내딛는 첫 발걸음이다. 어설프게나마 과거를 더듬어 얼기설기 우울증의 기원이 되는 실타래를 매듭짓고자 한다.


  두서 없을지도 모르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공감이 가신다면, 또는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경험을 공유해 주시기 바라며- 그럼 지금부터 '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