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의 시작', 사회과학 전공자의 비애
나의 이야기
집의 가전제품이 망가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전자제품 수리기사를 찾는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듯이, '무언가'에 이상이 생기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게 일반적인 행동 양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에 예외가 있으니 바로 사회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가 많다, 헬조선이다- 쉽게 이야기들 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사회 전문가는 찾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들을 얹는다. 전문가가 아니면 발언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보다 사회 문제는 피부에 와닿기 쉬우니 상대적으로 의견을 내기 쉽다는 것도 안다.
다만 전문가와 아닌 자의 발언의 무게가 단 1g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사회 전문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물론 나는 아직 사회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과학을 전공하였고 대학의 그 누구보다도 전공을 사랑하여 탐구하였다.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학문의 목표에 깊이 공감하여, 실제로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길 바라며 '전문가'로 향하는 길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하여도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발언이, 공기 중의 흔한 소음으로 흩어지는 것을 깨닫고 거대한 허무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낱 학부 전공생이라 권위를 갖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이내 문제는 다른 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물리학자가 아니고서야 '만유인력의 법칙'을 들어봤어도 이해했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법칙을 안다는 전문가에게 어디 한번 눈앞에서 당장 원리를 증명해 보라고 종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학자들의 말이, 전문가들의 권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계층 간의 문제와 차별을 개선하는 방법을 논하는 것이 아닌, 몇 번이고 차별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전제를 설명해야 했다. 공리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그 다음의 미래를 논의해야 함에도 몇 번이고 그 공리를 증명하라는 요구에 시달린다. 심지어는 차별의 존재, 계층의 존재-라는 공리를 해설하면 득달같이 비판하려 든다.
이런 상황에서 6~8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박사 학위'라는 고된 길을 가야 한다는 게 문득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전공이 너무나도 즐겁고 학문의 끝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매몰되어 있다가 영향력 한자락 갖지 못한 초라한 존재만이 남을 것이 두려워졌다.
전공 공부를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누구보다 부조리에 민감해졌지만, 그렇기에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속 가득 쌓이고 내뱉지 못해 곪아버렸다. 그럼에도 전공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지금 가는 길에 대한 확신만 잃어버린 채 멈춰버렸다.
이것이 대학원에서 느낀 첫 번째 불안이자 지금까지 떨치지 못한 그림자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