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당신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눈을 마주하지 않은지 어느덧 6년째네요. 그동안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스쳐 지나가도 아무런 관심을 주고받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내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목표한 바를 향해 즐겁게 나아갈 수 있었어요. 모든 게 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죠. 그래서 나는 당신과의 기억을 이겨낸 줄 알았어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을 가졌기에, 직장을 잃고 자존심의 뒷배경을 잃은 당신의 자존감은 열등감이 되었죠.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휘둘렀던 그 모든 폭력을, 경제력을 되찾은 상태에서는 차마 외면하고 싶었는지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위를 차마 입에 올리지는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한 채 관계를 좁히고자 시도하셨죠. 그래서 나는 편하게 당신을 무시할 수 있었어요. 당신은 여전했으니까.
여전히 모르는 것 하나 없는 척, 어디서나 잘난 척 나서길 좋아하며 비대한 자아를 뽐내는 그 모습.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은 죽어도 인정하지 못하는 당신이기에- 또다시 경제력을 잃으면 열등감에 자신을 좀먹으며 고슴도치처럼 타인에게 가시를 휘두를 것이라 믿었어요.
그런데 아버지, 당신은 왜 이제 와서 제게 관심과 용서를 구걸하시나요? 왜 지금에서야 당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행위가 '폭력'이었음을 인정하시나요? 왜 자신 역시 폭력 속에 자랐기에 잘못을 몰랐으며, 폭력의 의미를 가르쳐 준 내게 감사하다고 말하나요? 왜. 왜. 이제 와서.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남북전쟁에도 참여하는 등 격동의 시기를 사셨죠. 그런 분이시기에 12살이나 어리고 종래에는 평생을 도박에 빠져 산 할머니와는 더더욱 맞지 않으셨겠죠. 손주들 보는 앞에서조차 부부싸움을 여러 번 내보이셨으니 저도 알아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남에게만 모든 기대를 걸고 지원을 하였지만, 오만해진 장남은 매일 싸우는 그 부모와 연을 끊고 나가버렸죠. 하지만 집안의 두 번째 대장인 장남에게 평생을 맞고 자란 당신은 집을 나간 장남의 역할을 대신하느라 바빴죠. 언젠가 어머니가 당신을 용서하라며 제게 말해주셔서 알아요. 내 알 바 아니라며 기억 저편에 처박아 두었을 뿐.
아버지, 저는 당신이 싫었어요. 그 장남의 역할은 결국 며느리인 나의 어머니를 희생해서 행해졌고, 당신의 자식들인 나와 내 형제들조차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우리를 예뻐하는 외가 대신 용돈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곳에서 어머니를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남들에게 당신을 끊어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어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 않았기에 오히려 일찍 성숙해지고 생각이 깊어진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일이 꼬이고 있는 지금, 내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 지금, 화가 속으로 곪아가는 지금, 왜 하필 지금 진실된 사과를 하시나요.
갱년기가 오셨나요, 외로워지셨나요. 변하지 않는 부모와 등을 돌린 가족들을 보다가 문득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까 불안해지셨나요. 환갑을 앞두고서야 드디어 애정을 갈구하는 초라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까.
망할. 저도 그런 것 같네요. 나는 다르다며 건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정서상태가 바닥을 찍고 보니 알겠어요. 경제상황도 미래도 불투명한 인문사회계 대학원생으로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나서야 나 역시 상황에 휘둘리는 연약한 자신을 붙들고 있던 거란 것을. 함께 길을 걸어가는 선배도, 동기도 없는 곳에서 내심 누군가의 단단한 신뢰와 애정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나는 당신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니, 받아들이고 싶은지조차 모르겠어요. 당신이 60년이 걸린 것처럼 나는 아직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당신의 사과 한 마디로 과거에 다시 묶여있음을 깨달아버렸기에- 지금의 내 선택이 온전한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선택이 되지 못할 것이며, 나는 당신에게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내가 필요해요. 아니, 나도 몰래 나를 내다버릴 시간이 필요해요.
제발, 나를 흔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