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는 수치가 따른다

by 능소니

우리 연구실에는 '왕고'가 있었다. 그는 전업 대학원생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에는 약 10년이 걸렸다. 오랜 시간 끝에 그가 마침내 박사 논문 발표를 마친 날, 그의 지도교수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논문을 혼자 쓴 티가 나네요

나는 경악했다. 원래 논문 발표 때에는 다른 심사위원을 겸하는 교수님들이 돌아가면서 피드백을 주고, 담당 지도교수는 마지막에 학생 입장을 대변하거나 마무리 코멘트 정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도교수는 대개 학생이 논문 쓰는 과정을 낱낱이 알고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런 피드백이라니? 흡사 홀아비가 자식한테 "부모 없이 자란 티 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해당 교수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지도교수님 아래 있었던 다른 선배가 조용히 그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왕고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고 한다. 학교에 오래 남아있었던 만큼, 자신 외의 다른 학생들은 자신의 논문을 이해하기에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지도교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 데에 대한 불만과 교수님의 관점과 이론은 최신 트렌드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에, 완성본 이전의 초고를 미리 보여드리고 논의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역시도 그러고 있었다. 나는 반대로 지도교수님을 학부 때부터 대단하다고-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일을 시키면 척척 해내는 믿음직한 제자로 보이고 싶었다. 때문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바보 같은 질문일까- 하는 걱정에, 교수님한테 물어보지 않고 혼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면서도 결과물을 평가할 때는 대가들의 이론과 교수님의 것을 비교 대상 삼았다. 자신을 몰아붙이면서도 조금의 아량은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대학원 과정은 고독한 창작의 여정인 동시에,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과 피드백을 수용해야 하는 과정이다. 논문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필자의 깊은 사유와 논리적 구조를 바탕으로 독자를 설득하는 힘을 담아야 한다. 독자가 없는 한, 나의 논문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무척 어렵다.


왕고는 자존심과 지도교수에 대한 불신 때문에 '피드백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나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 때문에 혼자만의 골몰로 시간을 날렸다. 일련의 태도는 결국' 졸업의 지연'이라는 뼈아픈 결과로 돌아왔다.


이는 연구와 창작의 과정에서 '미완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큰 독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완벽한 초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초고는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을 타인의 시선과 지적을 통해 채워나가야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대학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수치를 견디는 용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란, 미완성된 나의 생각과 논리가 타인에게 비판받고 지적당하는 과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고, 논리의 허점이 노출되며, 심지어는 내가 쌓아온 지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 불편하고 부끄럽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쓰는 논문은 궁극적으로 독자를 설득하고 학계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검증되고 날카로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교수님, 선배들, 동료 연구자들, 때로는 후배들도 바로 이 과정에서 나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들의 피드백은 내 부족함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제시하고, 논리적 비약을 메워주며, 궁극적으로 나의 논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지침이 된다.


늘 그렇듯, 처음 미완성된 나의 글을 내놓고 평가받는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을 얻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발견하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나의 치부를 공유할 때 성장이 시작되는 법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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