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원의 넓이, 우리가 모르는 것은 원의 둘레다." 더 많이 알수록,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된다.
나는 전공이 너무 좋아 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식의 끝에 다다르고 싶었고,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발언권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석사과정 중에 조울증이 발병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울 삽화(挿話)로 꽤나 고생을 했었다.
이전 편에서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구체적인 과정에 관해서는 설명한 바 있다. 결국 요지는 하나다. 지식이 늘어날수록, 깊이 공부할수록 무엇 하나 '안다'라고 단언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평생 나의 가장 큰 장점으로 비판적 사고력과 작문 능력을 꼽았다. 하지만 대학원에 와서 확신을 잃고 나자, 한 문장을 쓰는 데도 수없이 망설이게 되었다. 내 장점은 흐려지고, 부족한 점들만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자존감이 닳아갔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면 된다고 다독였지만, 알아야 할 것들이 쌓여가는 속도에 비해 시간은 늘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교수님께 글을 못 쓴다고 혼난 적은 없지만, 마감 일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몇 번 지적을 받았다. 교수님께서 조언하시길, 끝을 모르고 탐독하다가는 골방 학자 되기 십상이랬다.
네가 모르는 부분이 어디인지는 인지하되, 결과물을 내기까지 필요한 만큼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훗날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해.
그렇다면 어디까지 공부하고 어디서 멈춰야 할까? 여기서 구분해야 할 개념이 '소비자로서의 공부'와 '생산자로서의 공부'이다. 후자는 곧 '연구'다. 교수님의 비유를 그대로 읊자면, 학부 때의 공부는 단연 소비자로서의 공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파스타 중 교수님들이 정제된 이름 있는 최고급 파스타를 맛 보여 주는 것이다.
반면, 대학원에서는 파스타를 직접 만든다. 다 같은 파스타인 줄 알았는데, 푸실리, 스파게티, 링귀니 등 엄청난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 입학한 직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파스타(담론) 앞 겁을 먹기 쉽지만, 아직 석사과정생에게는 당장은 종류를 구분하고 존재만 알아둬도 충분하다 하셨다. 종류는 다양해도 기본이 되는 파스타 삶는 법, 양파 써는 법만 단련하라는 것이다.
박사과정생은 소스도 골라보고 재료도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나만의 시그니처 파스타를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이야기다. 웬만한 악덕 교수 밑이 아니라면, 석사과정에서는 성실하게 공부했단 사실을 증명할 수 있으면, 기본만 갖추어도 충분히 졸업할 수 있다.
그러니 나처럼 뛰기도 전에 날려고 하지 말자. 막 대학원에 들어온 주제에 마르크스나 부르디외 같은 대가를 꿈꾸며 자신을 몰아붙이다 가랑이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선은 써라. 나만의 글을 한 줄, 한 줄 쓰다가 막히면 그때부터 이어서 공부하고, 그다음 논리를 이어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멈추고 생산하자. 그렇게 논문을 한 쪽씩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스텝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논문을 쓰겠다는 건 환상이다. 옛 선인들의 말처럼, 시작이 반이다. 스스로의 무지를 깨달은 것만으로 이미 당신은 훌륭한 대학원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