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정신건강

by 능소니

썸네일만 봐도 알겠지만,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은 몹시 위태롭다. 어디선가 본 통계로는 박사과정의 절반 넘는 학생들이 한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 카더라. 나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더니, 조울증이 발현했다더라. 처음에는 우울증으로 오진을 받은 탓에, 약물치료로도 차도가 영 보이지 않아 1년간 논문 쓰는 것을 멈췄더랬다.


겁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나는 다르겠지- 하며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때문에 너무 방심하지 않고, 미리 대비하여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9n 년대 생으로서 나는 홍은영 작가님이 아름답게 그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몇 번이나 읽었다. 그래서 비유하건대, '시시포스'를 아는가? 시시포스, 시지푸스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꾀가 많아 신들을 여러 번 골탕 먹였다. 때문에 그는 큰 돌을 가파른 언덕 꼭대기로 옮기는 벌을 받았다. 여기부터는 다들 잘 알 것 같은데, 문제는 정상에 돌을 올려놓는 순간 돌은 다시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그는 다시 처음부터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하였다는 이야기다.


주목할 점은 그가 갇힌 곳이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저승)보다 훨씬 어둡고, 신들조차 범접하기 힘든 그 너머의 공포스럽고 깊은 '타르타로스'라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만큼 해방 없는, 끝없는 노력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삶을 강력한 처벌로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선조들의 선견지명을 대학원 와서 깨달을 수 있다.


'기약 없는 무가치한 노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1화에서 교수님이 대학원 입학을 한 차례 말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사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졸업할 수 있지만, 박사는 그렇지 않다. 박사 학위를 딴다는 것은 하나의 연구자로서 학계에 명확한 기여를 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길에 도달하기까지는 무척 지난하고 힘든데, 도달할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비단 학위 논문이 아니더라도 학술지에 투고할 단 하나의 논문 작업도 품이 많이 든다. 분석 결과는 내 마음대로, 내 가설대로 나오지 않기 마련이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여차저차 논문을 완성했다고 치자, 명망 높은 저널에 실리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나의 연구가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정신건강이 악화되는 급행길로 들어선 셈이다.


공대는 전문성이라도 인정받고 졸업하면 일자리가 그래도 보장된다고 한다(아니라면 죄송하다). 하지만 자칭 정치, 사회 전문가들이 널린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계열 순수학문 전공자? 취업길 보장 이전에 전문가로서의 발언권 하나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데 공부에 대한 애정만으로 버티기에는 정말 힘들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제 다시 연구의 즐거움을 되찾았지만, 이전과 달리 전공과 거리를 두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무슨 말이고 하면- 예전에는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나올 때까지 매달렸다. 분명히 몰입한 시간 자체는 길어도 순수 생산성이 떨어진다 싶으면,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꾸준히 하던 취미생활도 운동도 자제했다. 그 결과 체력도 떨어지고 기분을 환기할 다른 일상의 이벤트가 사라지면서 점점 더 시야가 매몰됐다.


그러니 하루하루 나아간 아주 조그마한 진전에도 자신을 칭찬해 주자. 작은 목표를 세우고 과정의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말이지만, 대학원생은 특히 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연구자의 길은 장거리 달리기와 같아서, 부족한 하루라고 생각되더라도 루틴을 만들어서 꾸준히 지키는 것이 오래 달릴 수 있는 비결이더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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