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은 왜 타성에 젖는가?

by 능소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지도교수님이 좋다. 한국과 소속 대학의 연구 환경이 싫을 뿐, 지도 교수님만큼은 인품과 논문지도, 수업 진행 모두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학문의 목표라 그런지, 사실 우리 학과의 대부분 교수님들은 무척 좋으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인문사회계 내에서 엄청난 악덕 교수는 그다지 만나기 힘들다. 아, 물론 나이가 좀 많은 교수들 중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없다시피 한 '개저씨' 수준의 언행을 일삼는 인간도 있다. 그럼에도 학문의 목적도 그렇고, 애초에 학과 내 자본 규모가 달라서 그런지 극단적인 빌런의 출몰 빈도는 적은 편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여느 교수들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타성에 젖는 교수는 여기서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이 하고 싶던 연구 주제에는 '오타쿠'처럼 몰입하지만, 학생들 지도나 학과 내 사업에 손을 놓는 교수들은 왜 그럴까? 나는 그 답을 학과장 교수님과 함께 일하며 알았다.


지도교수님과 별개로 학과장 교수는 수업과 논문 지도 외에도 학부 학생들 및 학생회를 주로 담당하고 교류하는 교수이다. 인맥이 중요하고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곧 권력인 예체능계에서는 '학과장'은 다른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됐건 많은 학과에서 '학과장'은 전임 교수들 중 막내가 주로 '짬처리'를 당하는 것 같았다. 연구할 시간은 부족한데, 학과 예산 처리 등 이런저런 잡다한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귀찮은 직무이기 때문이다.


행정 일은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소하고 꼼꼼히 처리해야 하는데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있지, 보람과 가시적인 성과물은 없지- 누구나 하기 싫어할 만하다. 대충 하자니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행정 집행이 제대로 안되면 위의 수많은 교수 선임(?)들이 프린트 토너와 A4용지가 부족하다느니, 다음 학기 강의 언제 해야 하냐느니- 눈치를 준다.


이처럼 학과 회의 개최부터 교수들 강의 시간 배정, 학과 예산 집행만 해도 연구 시간을 많이 뺏기는데, 후임이 안 들어오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우리 학과장님은 옛날 20년 전 모교의 학부 출신이었더랬다. 학생에서 학과장으로 돌아오게 된 학교에 대한 감회와 애정이 남달랐던 관계로, 열정적으로 학과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기어코 학과장님은 BK21사업은 아니었지만, 교육부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새롭게 개시하는 사업을 따왔고, 나는 해당 사업의 보조 인력으로 일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보통 교육부 - 학교 본부 - 학과 행정팀 - 학과장 순으로 거쳐 거쳐 일처리가 이루어진다. 우리 학과장님은 학부생들을 위해 '라떼는 없었던' 답사부터 여러 유익한 양적 방법론 강의, 졸업생 초빙 강연, 수업 개설, 미디어 비품 구입, 학술제 개편 사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신(新)사업이었다는 것이다. 명확한 규정을 몰라 학과장님은 혹여나 연말 결산 및 감사에 문제가 생길라, 사업을 집행할 때마다 행정팀을 통해 진행 사항을 검토받았다. 그러던 중 1년 차 사업 연말 감사에 지적사항이 발견되자, 문제가 없을 거라던 행정팀은 말을 바꾸고 모르는 체했다. 녹음이 되지 않던 전화로만 논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던 나와 학과장님만 억울해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학과장님은 교수지만, 담당 행정 직원은 계약직이라 앞으로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읍소했다.


누구보다 학과를 위해 진심으로 일했지만, 학부생들은 과거와 달리 학과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모른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참여율도 그저 그런 상황에서, 학과장님은 교수들 사이에서는 눈치를 보고, 행정팀과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고작 3년짜리 사업을 하면서 나는 실시간으로 교수님이 닳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호되게 신고식을 당한 이후로는 행정팀이고, 학과장님이고 점차 보수적으로 굴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혁신적인 사업 대신 뻔하디 뻔한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싶어 했다.


아- 그 열정은 멋모르는 신임 교수라서 가질 수 있었던 거구나. 여기도 흔한 공무원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가지고 있구나.


교수들은 업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 자체적으로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7시 전후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아점을 먹고 11시쯤 나와 저녁 11시에 집에 갔다. 교수님들 중 아침에 나와서 유일하게 나와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던 학과장님은 이제 더 이상 야근을 하지 않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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