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장 가까운 국어학원이 있다. 동네에서 명성이 있는 국어학원을 1호, 너는 생각도 없겠지만 애미인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낼 생각이 있었다. 약간 어이없는 상황이다. 먹을 사람은 생각이 없는데 엄마는 벌써부터 진수성찬을 차리는 느낌이랄까.
1호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초등 때부터 넌 국어를 잘 못했단다. 단원평가를 잘 본다고 국어를 잘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엄마표 공부를 4년이나 하니 내가 너에 대해서, 가끔은 너보다 더 잘 안단 말이지.
때마침 중학교 공부 중 국어공부가 제일 어렵다는 너의 한 마디. 이때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너는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쉬는 날에 맞추어서 1호를 보낼 국어학원 상담을 다녀왔다. 전화예약을 한 후 바쁜 아이 없이 엄마만 상담 가능하다길래 부리나케 다녀왔다. 한 달 학원비가 24만 원에 교재비는 별도란다.
1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깟 학원비가 대수랴. 잘 다녀주기만 한다면 감사할 따름이겠지. 초등과 달리 사춘기가 온 중등은 다루기 힘들다는 소문이 있는데 우리 집은 내가 조련(?)을 좀 잘하는 편이라서 아직까지는 괜찮기는 하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학원 상담을 끝내고 오는데 왠지 뒷골이 땅기면서 뻐근하면서 찝찝한 것이 뭐를 누긴 눴는데 아직 남은 느낌으로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감싸지면서 영 컨디션이 별로다.
내가 모성애가 갸륵한 건지, 자기애가 부족한 건지, 아니면 그냥 짠순이여서 그런 건지 애 애 보낼 학원비 결제는 푹푹 시원하게 한방에 할 거면서 나를 위한 슬초 브런치 결제에는 얼마나 망설였던지 다시 곱씹어 보게 된다.
처음에 내가 선뜻 결제를 못 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를 완수를 못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혹시라도 나만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인 줄 알았었다. 그런 줄 알았다. 국어학원 상담을 다녀오기 전까지 나도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게 아니었던 거다.
나에게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던 거다.
어쩜... 내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아마도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틀에 박힌 생각들이 있어서 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40 이 넘어서 뭘 하려고 그래.
그냥 적당히 살면 되지.
내가 지금 하면 잘할 수 있겠어?
일 다니고 애 키우기도 바쁜데 작가는 무슨.
이런 생각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데다가 돈까지 드는 일이라니 선뜻 결제가 힘들었던 거다. 생각보다 내가 나를 덜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이게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건지, 나이 듦의 증거인지는 알 길이 없다.
나에게는 집에 읽다만 책이 여러 권이 있다. 어떤 책은 작가가 좋아서 그 작가가 쓴 책은 몇 권이고 사놓고 표지만 읽은 책도 있다. 혹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전시용으로 구매하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No"이다. 도서관 대출이 아니라 굳이 책을 사는 이유는 내가 책을 갖고 있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읽는다는 거다. 완독률이 엄청 올라간다. 그리고 내가 굳이 돈을 주고 산 책은 딱 한 번만 읽고 그만두는 경우는 없다. 정말 좋은 책의 경우는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봤을 경우 나에게 남는 여운과 메시지가 더욱 진하게 남는다는 것을 느낀다. 그에 반해 대출한 책은 연체문자를 받다가 반납하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하늘을 찌른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사랑 표현이다. 결제를 해서 글쓰기 과정에 들어온 것은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슬초브런치 과정이 무료였다면 이렇게나 깊이 고민하고, 또 생각하며 곱씹어서 생각을 했을까? 과연 내가 그럴 리가.
뭐든 돈을 주고서 가져가는 것이 더 나에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 되더라. 결국 나는 비용을 결제하고 당당히 슬초브런치 3기 멤버가 되어 매일매일 열심히 무언가를 하며 꿈지럭거리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미라클모닝에 아침글쓰기를 하려 마음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다들 그렇듯이 처음에는 엄청난 의지가 불타올라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흐지부지 결론 없이 끝나버렸다. 그런 일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난 끝까지 해보려 한다. 나는 나에게 글쓰기 공부 기회를 주기 위해 결제를 했다. 돈이 아깝지 않도록 아주 그냥 본전을 뽑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