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을 쥐어짜며 공부하는 고3 수험생 같은 시절을 몇 년을 보내고 2003년 간호사 면허시험에 합격하여 당당한 간호사가 되었다. 어마무시하게 마신 카페인과 옛날 전화번호부 같은 두께의 전공 서적 무게에 비하자면 그 많은 시간을 보낸 나에게 남겨진 것은 겨우 상장 같은 A4용지에 새겨진 간호사면허증이라는 종이 한 장뿐이다.
깃털처럼 가볍고 여타의 자격증과 다르게 별 폼도 안 나 보였다. 내가 요 종이쪼가리 하나를 얻으려고 그동안 그렇게나 무지막지하게 공부를 하고, 100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실습을 했구나 라는 생각에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서류가 중요한 나라다. 일을 할 때 자격증이 있냐, 없냐는 차이는 엄청나단 말이다. 특히 의료현장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비슷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면허가 있냐 없냐, 자격이 있냐 무자격자냐를 많이 따지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뭘 몰랐던 거였다. 이 별 아닌 것 같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을. 나에게는 이 간호사 면허증 한 장이 내 생계의 근원, 거의 전부이다. 다른 여타의 수많은 자격증들은 국가공인이라 하더라도 나의 손에 10원 한 장을 쥐어주질 않는데 말이다.
솔직하게 고백하기 너무 부끄럽지만 44살이나 먹은 나는 간호사가 된 지 햇수로는 22년 차이지만 임상경력은 약 7년 5개월 차로 어디에 경력간호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물론 중간에 간호학원과 요양보호사교육원에서 강의하고, 흡연예방과 약물중독예방강사, 성교육강사로 10년 가까이 활동했다지만 실질적으로 간호사에게 진짜 경력은 임상, 즉 병원 경력만을 진짜로 쳐준다.
어쨌든 이런 경력을 가진 나일지라도 병원에서 보기에는 흔하디 흔한 경력단절여성일 뿐이었다. 혹시라도 경력기간보다 경력단절의 기간이 더 길면 어쩌라는 거죠?라고 면접관이 묻는다면 난 어쩌란 말인가. 무슨 말을 해야 좀 더 있어 보이려나.
우리나라의 사회에서 육아와 살림은 어딜 가나 경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저 집에서 애 보면서 노는 엄마로 취급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귀한, 어느 3D (3 dangerous) 직업 보다도 힘든 일을 하고 있다. 난이도 최상의 육아를 하는 전업맘을 너무 폄하하는 사회에 내가 살고 있다니. 솔직히 나는 세상 모든 엄마들을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해 본 사람들만 알겠지만 육아라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내가 이미 재취업에 도전하기에 자신감은 이미 바닥에 있어서 목소리마저 작아질 지경이었다. 남편은 워낙에 평생직장맘이던 시어머니의 셋째 아들이기에 두 형 아래에 엄마의 부재가 성장기 내내 아쉬웠나 보다. 그에 반해 전업맘이었던 친정엄마의 우울증 덕분에 강제로 착할 수밖에 없었던 나와는 다른 상황이다. 남편은 2호가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 다시 일을 하던지, 아니면 계속 쉬던지 하라고 했다. 당신은 마누라 나이 먹는 거는 생각을 안 하는구나. 생각을 해보라. 젊고 팔팔한 간호사들 많은데 굳이 나 같은, 슬슬 흰머리가 하나둘씩 솟아 나오고 있는, 노환이 와서 안경을 안 쓰면 안 되는 불혹이 넘은 나를 간호사로 고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는지. 당신 같으면 나 같은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할 것 같은지. 마구 퍼붓고 나서야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만큼 자신 없고 불안하다는 건데. 극 T형인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시간이 지나도 계속 모를 것이라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얘기로는 부부는 서로의 꿈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고 한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무엇을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냥 아이 키우면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란다. 내 반쪽 또한 여느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당신도 평범한 대한민국 남편이니까. 그러던 내가 그에게 나의 꿈에 대해서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또한 그랬던 것이다. 예전부터 은퇴를 하면 조그마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남편이다. 그는 진지한데 반해 나는 그런가 보다 한다. 이런 경우를 전문용어로 '쌤쌤'이라고 하는 거구나.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때였다.
너스케이프라 불리는 간호사만을 뽑는 채용사이트가 있다. 지역별, 의료기관 별로 다양하게 검색을 해볼 수가 있다. 내가 재취업에 성공하려면 일단은 내가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신생아실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소아과로 지원하기로 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정형외과 같은 데를 지원했다가는 가는 면허를 갓 딴 신규보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경력단절 간호사라서 병원시스템이나 여타의 것들이 많이 바뀌어서 허둥댈 수도 있단 말이지. 그리고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는데 자랑이지만 나는 간호사로써 주사는 좀 잘 놓는 편이긴 하다. 첫 직장이던 대학병원에서 워낙에 안 좋은 환자 케이스를 많이 만나서 많이 찔러본 경험이 있으니. 자전거는 한 번 타면 오랜만에 타도 금방 기억을 한다는데 주사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터지기 직전까지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주사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니 일단 무기 하나는 장착을 한 셈이다.
면접을 본 소아병원에 합격하여 1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도대체가 잠을 다 못 자겠단 말이다. 자신만만했던 주사를 잘 못 찔러서 실수를 많이 하면 어쩌나,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하는 나이트 근무란 말인가. 워낙에 잠도 많은 내가 버틸 수가 있으려나. 출근하기도 전인데 다음 달 근무표는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