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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최신형 휴대전화를 쓰는 이유

298일차

by 소곤소곤


나는 간호사 엄마다. 병원에 출근하면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 언제나 일 할 꺼리는 넘쳐나고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로 병원은 가득 찬다. 오늘따라 유난히 매끄럽게 일이 잘 진행되던 날이다. 독감환아가 입원을 한단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니 가볍게 간호를 하려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란다.

기본적으로 환자가 입원을 하면 일단 병실에 들어온다. 간단히 열과 호흡수를 체크하고 환자의 기본 정보를 다시 한번 체크하기 마련이다. 물론 진료실에서도 환자의 상태를 이야기했겠지만 간호정보지에 다시 한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다. 현재 가장 불편한 증상은 무엇인지, 열은 언제부터 났는지 등의 환자 정보를 다시 묻는다. 그리고 병실의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진다. 정수기와 전자레인지의 위치, 응급 시 간호사를 부르는 벨번호와 병실 청소에 관련된 이야기, 회진 시간과 식사 시간, 병원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설명한다. 이렇게 기본적인 간호가 이루어진다.

일상적인 경우에 이런 간호는 어려울 것이 없다.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기에.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손에 꼭 쥐고 있는 휴대전화가 있었다. 자~ 이제 환아의 열을 재고 보호자분에게 아이의 상태를 물으려는 순간이다. 아이의 엄마를 가볍게 불렀다.

보호자분~

출근해서 내가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이다. 이 분 나를 쳐다보지 않고 그저 짐을 챙기시기에 바쁜다. 다시 한번 불러본다.

보호자분~~

여전히 본일 할 일을 하신다. 프로인 나는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다. 어깨를 톡톡 치니 이제야 보호자분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말을 꺼내려는데 이 분 본인의 휴대전화를 여신다. 어이구야. 이제 입을 열어 한 마디를 내뱉으려는데 갑자기 문자를 하시는 거다. 간호사를 바로 옆에 세워놓고 개인적인 볼 일을 보시는 분도 더러 있기에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상황이 상황이지 않나. 갑작스러운 입원이 대부분이기에 이 분을 조금은 더 배려하기로 마음먹었다.

보호자분은 휴대전화에 문자를 입력하시더니 나를 보여준다. 아~ 이 분 듣지를 못하신다. 눈에 띄는 최신형의 휴대전화를 쓰시는 분이었다. 접었다 폈다 하는 휴대전화로 전화를 책처럼 활짝 펼치면 내 손바닥보다도 더 넓은 화면이 보인다. 자~ 이제부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대화는 시작된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는 내 휴대전화를 이용하지만 지금은 이 분의 휴대전화에 대고 말을 해야 한다. 어떤 어플을 까셨는지는 알 수 없다. 휴대전화에 말을 하면 그대로 글씨가 화면에 찍힌다. 세상 참 좋아졌다. 외국인의 경우 말을 하면 통역이 자동으로 되는 것은 보았지만 한국말을 하면 한글이 찍히는 것은 참 신기했다. 이렇게 디지털기기를 이용하여 스마트하게 입원간호가 이루어졌다. 그냥 말로 전하면 편할 것을 이 보호자분과의 대화는 다른 환자와의 대화보다 세 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입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한 가지의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이 휴대전화가 너무 스마트하다는 거다. 입원설명 중 5살 정도의 환아가 심심하다며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뽀로로가 방송되고 있었다. 뽀로로의 목소리는 얼마나 또박뽀박하고 말이 빠르던지. 그 목소리도 휴대전화가 다 캐치하여 자막으로 바꾸어주었다. 모두가 깔깔대는 상황이 되었다. 남들이 보면 기가 막힐 수 있다. 독감으로 입원한 것이 뭐가 웃기다고 간호사랑 보호자가 웃고 난리도 아니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빠른 간호를 위해 텔레비전은 음소거 상태를 잠시 유지해야 했다.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을 하고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감사함을 잊고 살고 있다. 이 아이의 경우 엄마와 아빠가 모두 말을 못 한다고 한다. 두 분 다 듣지를 못하시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입원한 꼬마는 쫑알쫑알 잘도 떠들어댔다. 어린이집을 일찍부터 다녔다고 한다.

최신형 핸드폰의 자막서비스가 이리도 유용하다니 우리나라의 기술발전에 감탄했다. 중간중간 환아의 컨디션 체크를 위해 병실에 들렀다. 보호자인 엄마는 청각장애인인 큰 아이와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 중이었다. 커다란 화면으로 수화를 하면서.


나이트 근무 중 아이의 컨디션을 살피러 또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분 드라마를 보고 계신다. 휴대전화의 자막서비스를 켠 상태로. 마치 영화관에서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약간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며 드라마를 분주히 보고 계셨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채로.

이게 청각장애 엄마가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분에게는 꼭 필요한 휴대전화다. 불편함을 덜 불편하게 해주는 도구다. 이 분에게는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 대신 생활의 편리함을 도와주는 도구라는 말이 맞겠다. 이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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