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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또 오지 마

290일차

by 소곤소곤


병원에서의 인사말은 예사말과 다르다.

만나면 반갑다는 인사를 한다. 자연스럽게.


헤어질 때도 인사를 한다.

안녕~ 또 오지 마.


여느 단골 식당과는 다른 인사말을 한다. 여기는 소아병원이다.


입원했던 아이들이 퇴원을 하려면 팔에 달고 있던 수액을 연결하는 수액줄을 제거해야 한다. 처음 주삿바늘이 들어갔던 가느다란 실리콘 같은 주사관을 빼면서 알코올솜으로 5분 이상 눌러서 지혈시켜 준다. 지혈 후 감염예방을 위해 방수밴드를 붙여주면 아이의 퇴원준비는 끝이 난다. 그 많은 캐릭터 중에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전 세계적으로 슈퍼스타인 뽀로로와 친구들이 그려진 방수밴드를 항시 비치하고 있다. 병원물품은 기본적으로 아껴 쓰는 편인데 뽀로로밴드, 이것만은 아껴 쓰기 힘들다. 울며불며 떼쓰는 아이에게 한 개를 주면 한참을 보느라고 금세 순해진다. 형제가 같이 있는 경우 한 명만 줄 경우 금세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으니 미리 다툼을 예방하기 위해 하나씩 주기도 한다.

뽀로로는 여전히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간혹 일하다가 손가락이 베이는 경우가 있으면 간단히 연고를 바르고 뽀로로밴드를 붙이고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열을 재는데 손가락에 감긴 뽀로로와 친구들이 그려진 스티커를 보느라 아이는 정신이 팔린다.





뽀로로 방수밴드를 붙인 아이는 퇴원하는 옷차림에 생기마저 돈다. 수액이 연결된 주삿바늘을 제거했을 뿐인데 갑자기 환자 같던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귀여운 꼬마아가씨가 씽긋 웃으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요 녀석~ 이제 많이 살만해졌구나.


퇴원을 준비하는 꼬마아가씨는 나랑 놀고 싶어서 간호사실 주변을 맴돌더니 급기야는 스케치북을 찢은 종이를 가져온다. 발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이지만 분명 손에 쥔 색연필로 그렸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그림을 가져왔지만 잘 그렸다는 칭찬은 자동으로 입 밖으로 나간다. 생글거리며 웃는 아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우리의 마지막은 금세 다가온다. 이제 인사를 할 시간이다.

안녕, 또 오지 마.


여느 인사와는 다르다. 보통의 경우는 다음에 또 보자는 말로 다음을 기약하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의 입원실이다. 굳이 자주 볼 필요는 없는 공간이다.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를 하기도 민망한 곳이다. 아무리 우리가 정이 들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매정한 인사 같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건강해야 한다. 또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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