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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위의 작은 약속들

300일차

by 소곤소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달력이 중요해졌다. 우리 가족의 시간은 달력 위에 있다.

다음 주 목요일에 근무가 뭐냐고 물어보는 2호다. 글쎄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달력을 봐야 출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한 달의 근무표를 통째로 외우지 못하는 엄마다. 솔직히 외울 필요도 없다. 그저 근무표가 나오면 틀리지않게 달력에 잘 표시해두면 되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흡사 연예인의 스케줄같은 느낌이었다. 도통 규칙적이지가 않다.


예쁜 아기 달력에 엄마의 스케줄은 초록색 색연필로 표시된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와 오프가 한 달의 날짜를 채운다. 그리고 다른 색의 펜으로 가족들의 중요한 개인 일정이 얽혀 있다. 아이들의 중요한 스케줄은 형광펜으로 눈에 띄게 표시를 해 둔다. 아들인 1호의 스케줄은 파랑 형광펜으로, 딸인 2호의 스케줄은 핑크 형광펜으로 말이다. 남편은 대개의 경우 규칙적인 근무를 하지만 갑작스러운 출장이 잡힐 경우는 빨간 볼펜으로 표시해 둔다. 절대 잊으면 안되는 것은 붉은 색이 제격이다.

교대근무 달력은 나의 리듬이고 가족의 시간표다. 온 가족의 약속이 여기에 다 담겨있다. 약속은 지켜졌을 때 의미가 있고 기본적인 신뢰를 쌓는 척도가 된다.

3교대 근무를 한다는 것은 같이 출근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홀로 출근하고 홀로 퇴근한다. 이 부분 또한 약속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여느 직장에서 인수인계라는 것은 퇴사를 하거나 부서이동을 할 경우 다른 담당자에게 나의 업무를 넘겨줄 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같은 3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는 근무가 바뀔 때마다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데이 근무의 마지막 할 일은 이브닝을 출근한 간호사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 근무의 시작은 인수인계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고 근무의 마무리는 인수인계를 주는 것으로 끝난다.

약속의 중요성을 가진 직업을 가져서인지 아이들은 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나는 약속을 꼭 지키는 엄마니까. 모든 규칙을 다 지키는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한 약속만큼은 왠만하면 지키려고 한다. 쉬는 토요일에 같이 도서관을 가자는 약속을 했다. 손꼽아 기다린 날이지만 가끔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근무 변경이 있을 때가 그러하다. 그럴 땐 미안함이 가슴 한쪽에 조용히 쌓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세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엄마. 다음 쉬는 날에 가요.”

아이들은 금새 많이 자랐고 이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교대근무는 늘 반복되지만, 그 속에는 매번 다른 사랑의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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