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1호는 중학교 2학년이다. 아들의 중간고사가 끝이 났다. 드디어 끝이 났다. 이제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원래의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난 중2와 초6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다. 아이의 시험기간이 끝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결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시험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내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부모님은 먹고살기에 정신이 없었다. 나와 동생을 키우는 것만도 벅찬 시기였기다. 그렇기에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름 공부에 대해서는 금수저였는지 모른다. 사람은 뭐든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부모님의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없어서 행복했다기보다는 나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내가 좀 저 정신을 차렸거나 억지로라도 공부시간이 늘어났을지도 모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은 공부 잔소리를 한다. 매일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숙제는 하고 놀아야 한다는 말들. 뭐 뻔한 소리다. 이런 말은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반대 편 귀를 통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월이 되기 며칠 전이었다. 1호 아들이 갑자기 다니던 모든 학원을 다 끊겠다는 거다. 그리고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빡빡한 학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이다. 어라? 웬일인가 싶었다. 학원 한 번 옮겨보자고 여러 번 얘기를 해도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스스로 옮기고 싶은 학원이 생겼단다. 딱 한 달만 다녀보고 싶단다. 그 학원 나도 알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학습시간이 길어서 아이들 사이에 악명 높은 학원이다. 나도 학원을 알아볼 때 이 학원만큼은 거르고서 알아봤었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학원 스케줄이 거의 고3수험생 수준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에 간다. 보통 오후 4시 정도에 학원을 가고 집에 오는 시간은 기본 10시 이후다. 12시가 넘어서 집에 온 적도 있다. 물론 학원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습을 끝내고 온 시간이다. 시험기간에는 주말까지 학원을 간다. 이번 달에 1호는 추석명절 3일을 제외하고 내내 공부를 했다. 이렇게 스스로 공부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백날 잔소리해도 소용없나 보다.
사춘기인 1호는 엄마보다는 친구들이 더 소중할 때다. 혼자서 공부할 때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이 힘든 공부를 친구들도 밤늦게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란 듯하다. 중학생이 된 지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가 전체 공부량의 전부를 차지하던 1호다. 그런 1호가 학원을 옮겼다. 매일매일을 태어나서 인생 최대의 공부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는 학교를 하루에 두 번 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많이 무리를 하고 있다. 너무 많이 마른 1호이기에 찬찬히 하라고 말할 뿐이다.
비록 한 달치 수강료를 결제했지만 이 학원을 끝까지 다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이러다가 번아웃이 올 것 같아서 말이다. 엄마가 다니라고 한 학원이었다면 아이는 며칠 안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원해서 옮긴 학원이었다. 1호는 정말 잠자는 시간 말고 계속 공부를 했다. 계속되는 피로가 겹쳐오던 어느 날이다. 1호가 슬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너무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기 힘들다고 말이다. 그만둔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더 다니기도 힘들고 말이다. 그럴 때는 부모가 나서줘야 한다. 아이는 중간고사를 1주일 남기고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계속된 피로와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아이를 푹 쉬게 하고 싶지만 지금은 시험기간이다. 최소한 잠잘 시간은 충분히 확보하되 스스로 자습하면서 마지막 마무리 공부를 하기로 했다. 역시 공부의 꽃은 자습이다.
이번에 아이는 확실히 느낀 듯하다. 성적이 오르려면 꼼수는 없다는 것을. 공부를 해야지 성적이 오른다. 공부하지 않는데 성적이 오르는 것을 바라면 안 되는 거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필요 없나 보다. 다들 때가 있나 보다. 이제야 1호는 정신을 차린 듯하다.
나의 레이더 망에 2호가 걸려든다. 넌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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