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 밖을 나온 루기 Oct 24. 2024

 40대의 아르바이트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물류센터에 졌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이 생겼다.


속물 같은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40대쯤 되니 돈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다고 여겨진. 그것도 많을수록.


 부자가 되려고 마음먹어야 부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투자도 시드머니가 필요한 법

그 씨앗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게 되었다


육아와 병행가능한

 집 근처 스케줄 근무가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다


 맥도널드 그래 너다.

20대 때에도 해보지 않은 패스트푸드점 알바라니

 

옷장을 뒤져 단정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선 내가 면접관에게  한 말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3시까지는 어렵습니다."

" 주말 근무는 어렵습니다."

" 간헐적으로 가능할 수 있으나 정기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웃상인데요?? "

(표정이 딱딱하다는 말에 저렇게 말하고 활~짝 웃어 보였다)


 나의 안녕을 기원하는 덕담과 함께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스케줄 근무처로는 쿠팡 물류센터를 찍었다.


힘든 노동강도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지만

하루 3시간, 주 2-3회 근무가 가능한 점이 내가

 딱 원하던 일자리였다.


호기롭게 출근한  첫날

 3시간 일하고

 집에 5시간은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소파에 지쳐 쓰러진 나를 보고

그만두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침상에서 유언 남기는 사람처럼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보 너무 재미있어.

 할 수 있어 지켜 바바”


운동도 되고 1석 2조라며 두 번째 출근을 하였다.

퇴근 후 4시간 누워 있었다.


 일한 시간보다 더 누워 있어야 하는 이 일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주문하는 모든 물건들이 컨테이너 벨트를 타고 지나간다.

벨트 좌우로 열댓 명의 사람들이 각자 맡은 자기 구역 물건을 매의 눈으로 찾아낸다

내 구역의 물건을 잽싸게 낚아채 뛰어다니며 커다란 캐리어격인 롤테이너에 차곡차곡 싣는다


이거 반복.


여러분, 쿠팡, 어디까지 시켜보셨나요?
쌀 10kg?

24개들이 음료수 한 박스?

고양이 모래는요?

 혹시 기다랗고 커다란 옷걸이 같은 건요?


그렇다.
 이 모든 무겁고, 거대한 것들도 벨트를 탄다.

 그것도 스피디하게


 내 키를 훌쩍 넘는 롤테이너 15개쯤을 가득 채우고서야 작업은 간신히 끝이 난다.


3시간짜리 파트타이머에게 쉬는 시간은 없지만. 아주 잠시, 5분 정도 짬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음료수가 두둥실 벨트를 타고 온다. 사탕도 오고, 초콜릿도 온다.


 작업 반장님 최고.

실컷 흘린 땀만큼이나 달다. 참 달아 아주 그냥.


비록  기계 앞에서 로봇 마냥 일하고 있지만

이 기계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뜨끈하게 만든다.

시원한 음료수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뿐이랴

신입이라 헤매고 있으면 상황파악을 끝낸  경력자가 빛의 속도로  나의 물건들 같이 해결해 주고 간다.

텃세라고는 없는 곳, 아 따스워라






4일 차 일을 마친 날, 집에 가려고 차 운전대를 잡은 팔에 힘이 안 들어간다.


 잠깐만, 나 핸들 돌릴 수 있나?


퇴근을 하였지만 일 터를 떠나지 못하고  30분을 차에서 쉬었다.

입술에는 강낭콩 만한 고름집이 잡혀 있었다.


 2일 차 퇴근 후 소파에 널브러진 나를 보고 남편

 “4일 본다”

그랬는데 점쟁이지 뭐야



 체력에는 자신 있었는데 물류센터에 졌다. k.o패

나에게는 적당한 일이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 뒤로 나에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미루기 일쑤이던 집 청소가 쉬워졌다.

 설거지는 어떻고, 심지어 공부까지 하고 싶어졌다.


마법 같은 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생을 살아나감에 있어 불필요한 경험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컨테이너 벨트 앞에 있는 그 3시간 동안 치열했고, 몰입했다.


그래서 힘들지만  분명히 재미있었다.   

비록 커피도 못마실정도로 퉁퉁 부은 입술로 일주일을 살아야 했지만, 땀 흘리는 노동이 값지게 느껴졌고 보람 있었다.


 입술 당나발로 계속 살 순 없으니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때를 떠올리면 기분 좋은 기억이 하나 있다.

앤젤리나 졸리처럼 부은 입술로 소파에 널브러져 노동으로 인한 젖산을 분해하고 있는 나에게 무뚝뚝한 대구 남자인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니 쫌 귀엽노 하하하하”


돈도 벌고 칭찬도 받았으니 나름 괜찮은 아르바이트였던 것 같다.

비록 4일뿐이었지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