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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Nov 21. 2024

나는 아이들의 충전기다.

가득 충전되면, 세상으로 나가서 빛나렴.


"솔아 학원 갈 시간이야"


소파에 노곤하게 반틈 누운 채로 만화책을 보던 아이가 책을 덮는다.

두 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온다. 반짝이는 눈, 입가에 살짝 올라간 미소를 띠고서 애교 있는 말을 오물거린다


"엄마, 충전."

표정 속에 나를 향한 믿음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안겨있는다.  내 어미가 맞는지 확인하는  강아지처럼  킁킁 냄새를 맡으면서.


"엄마 냄새난다. 이제 충전 됐어. 학원 다녀올게"

그래,  덕분에 나도 충전되었구나.



잠자리에 누워  아무렇게나 부둥켜안고 뒹군다.


"얘들아, 엄마가 살이 없어서  딱딱하고  별로지? "

우리 집 최고 장난꾸러기인 내가 장난을 건다.


"아닌데? 완전 폭신해. 엄마 다이어트 하지 마. 지금처럼 안았을 때 말랑말랑한 게 좋아."

슬라임을 안 사줬더니, 내 살이 그것인 양 주무른다.

"어허. 엄마 정말 날씬해질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살을 못 빼네. 너희 클 때까지는."



가끔 집안에 늘어진 옷이나 수건을 들고 여기서 엄마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엄마 냄새가 뭔지, 정작 엄마인 나는 모른다.

아이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언제든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지는 냄새이면 좋겠다.

혹시나, 오늘 하루 중 마음이 구겨지는 일이 있었다면, 그 구김이 반듯하게 펴지는 냄새이면 좋겠다.


내 삶이 곧 내 메시지다
-간디-


 내가 하는 말대로 아이가 자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보고 있는 내 뒷모습이 가르침이 되어 아이를 자라게 하고, 그것이 곧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첫째가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한다.

" 엄마 나도 엄마처럼 일 안 하고 남편이 벌어 주는 돈으로 아기 키우며 살래. 그래서 그냥 학교 졸업하면 키 크고 잘생기고 다정한 사람 만나서, 일 안 하고  결혼할래.

(그런 남자가 백수를 고르겠니 내 딸아.)

엄마도 너를 낳기 전에는 직장에서  일했거든.


그래서 엄마인 나는 성장해야만 한다.

칠순이 넘은 나의 친정어머니는  몇 년째 학교를 다니고 계신다. 어린 시절 어려운 형편에 학교를 제대로 못 나온 것이 평생의 상처이신 듯했다. 고관절 수술로 다리도 온전하지 않고, 운전도 못하신다. 그럼에도 매일 2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를  오가신다.

가끔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의 삶으로 딸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나의 엄마가 떠오른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좋은 사람이 되기를 애쓴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생각을 글로 쓴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 일이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행복했지만, 뒤에 쌓여 있는 고단함이 행복감만큼 보태지던 시절. 피로는 가끔 내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

할머니를 만난 우리 아이들은 조모의 넉넉한 사랑 대신, 꾸중을 받기도 한다.


"너희들 엄마 힘들게 하지 마. 엄마 말 잘 듣고. 너거 엄마는 피곤하면 아픈 사람이니까 알겠지?"


내리사랑이라던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아이들이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섭섭함이 잠시 스치기도 한다.


"손주도 내 딸이 낳은 자식이니까 이쁜 거지. 손주라도 내 새끼 아프게 하면 밉지."


친정엄마의 말에서 포근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배꼽 안 깊은 곳에서 시작된  따스함이 손끝, 발끝까지 퍼진다.


맞아. 나에게는 충전기가 하나 더 있었지.

나의 엄마는 나를 챙기고, 나는 나의 아이를 챙기고,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이 사랑안에서 나도 가득 충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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