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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6시간전

너희가 서울대를 가면 엄마가 책을 낼 수 있어.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나만의 진리는 있다

엄마. 엄마 또 글 써? 책은 언제 나와?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 수시로 남편의 서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묻는다.


"응. 너희 둘 다 서울대 가면 엄마 책 낼 수 있어. 책 내게 해줄래?"

나의 농담에 아이 둘 다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한쪽 눈썹을 장난스럽게 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기도 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 박혜란 작가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육아와 집안 청소를 병행하는 게 참 힘들었다. 집이 지저분했다는 얘기다.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시어머니께 이런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너그 이사가나?"

집이 항상 지저분하여, 이사 가는 집 같다며 하신 얘기라고 한다. 


저자는 무려 아이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냈다. 본인은 여성학자시며, 육아서까지 쓰신 분이 이런 얘기를 들었다니. 이 책을 읽고 나의 게으름에도 너그러워지기로 했다.(그말이 그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냥 그러기로 했다 )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희망도 가져보았다.


도서관에서 열린 강의로 만나 뵌 박혜란 작가님은 포근하시고 여유가 흘러넘치는 머니셨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이 셋이 서울대에 가기까지 본인은 한 게 없으시다며, 아이들 스스로 잘 컸다고 말하셨다.

좋은 어른으로서 보여주신 뒷모습, 그 자체가 엄마로서의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이  둘 다 서울대를 가서, 내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평소에 애들 공부도 열심히 안 시키고,  아이들과 같이 컸으면서 갑자기 육아의 신이 된 것 마냥 인터뷰를 하는 거지.


"네. 접니다. 제가 낳고, 제가 키웠어요. 저야 뭐 그냥 사랑 주고, 보이는 제 뒷모습에 신경 썼을 뿐입니다. 또, 뭐랄까 뭐든지 도전하려 했죠. 실패도, 성공도 모두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아, 그리고 좋은 머리는 물려줄 수 없었기에,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도 많이 읽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하하하하.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아마 그런 점들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어유 저는 한 게 없어요. 지들끼리 잘 컸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박혜란 작가님처럼 우아한 어른으로 보일 수 있겠지.


예능프로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여러 육아서만큼은 꼭 챙겨 읽었다. 책의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몇 가지 주제들은 저절로 나에게 남겨졌다.


그중 비싼 옷을 사입히지 마라는 내용이 기억난다.

아이들은 먹던 것을 흘리고, 넘어지는 것이 일상이다.

아이는 그저 아이답게 군것뿐인데, 비싼 옷을 입은 날이라면 꾸중을 듣게 될지도 모르다. 만약 혼을 내지 않는 엄마라고 하더라도 그 옷이 일회용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외부 활동 중 그 옷은 더 이상 착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어딜 가서든 대접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임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가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가 아니라, 아이와 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첫 아이가 1학년때였다. 하교 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한참 바라보던 중이었다.

가슴팍에 명품 로고가 박힌 고급진 백색(흰색보다 더 하얀 느낌) 카디건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의 반친구가 보였다. 잠시 뒤, 운동장 흙바닥에 누운 채 구르면서 놀고 있는 걸 보고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이가 혼나지는 않으려나 염려도 되었다.

옷에 구멍이 나고, 검은 때가 빠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엄마를 가졌기를 바라며.


나는 아이들을 아이들 뜻대로 자라게 하지 않고 부모들이 자신의 뜻대로 키우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과연 얼마만큼의 부모가 자신의 뜻을 세울 만큼 성숙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박혜란 지음)


나는 잘난 것 하나 없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나만의 육아 진리가 있다.

나는 그저 아이들보다 30살이나 더 많은 사람일 뿐, 아이들도 배려받아야 마땅한, 한 인격체임을 잊지 말자. 현시대를 몸으로 직접 살고 있는 아이들이 직감적으로 나보다 더 변화에  잘 적응한다. 현재 처한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할 것임을 믿어주자. 믿자.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온 힘들 다해 조언할 뿐, 결정은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그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박혜란 지음)


이유식을 떠먹여 주기보다 처음부터 스스로 먹게 내버려 두면 처음에는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그 잔해를 치우느라 엄마의 일도 더 많아진다. 하지만 그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 아이의 소근육은 더욱 발달하여, 음식을 점점 더 정확하게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결국에는 떠먹일 일도, 떨어진 음식을 치울 일도 없게 된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고백하자면 나는 떠먹이는 게 더 귀찮아서 치우는 걸 택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 하겠다.)

 



  나는 아마 아이들에게 생기는 많은 문제들의 정답을 찾아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데 있어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지못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원망 할 일은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너를 키우며 역시 계속 자라고 있으며, 모든 과정 속에서 너와 함께 너무도 행복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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