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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Nov 30. 2024

엘리베이터에 갇힌 날

10살 딸이 갇혔다고 전화가 왔다.

얼마 전의 일이다.

외출했다가 집에 막 들어가던 길이었다.

10살인  둘째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고 전화가 왔다.


집에서 탄 승강기가 1층으로 내려왔다가 문이 열리지 않은 채 다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른인 나라도 그 상황이면 무서웠을 듯한데, 다행히 아이는 울지 않고 전화가 왔다.

괜찮다고 아이를 안심시키고 바로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내가 집 엘리베이터 1층에 도착하니, 여러 명의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항상 아이들 하교시간에 점검을 하는 건지.

딸이 하교 후, 학원으로 나서는 길에 갇힌 듯했다.


엘리베이터에는 '점검 중'이라는 글자만이 떠있고,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꼭대기인 29층에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숫자가 점점 내려가더니 1층이 찍혔다.


"솔아"

아이 이름을 불렀다.


"엄마"하고 안에서 대답한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점검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불안했다.

다시 1분쯤 기다렸을까. 그제야 문이 열리고 아이는 내 품에 안겼다.


그 뒤로도 아이는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이 조금은 무섭다고 했다.


오늘 저녁을 먹고 식탁에 둘러앉아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둘째가 지난 일을 일기로 써도 되냐고 묻는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날의 일기를 적어야겠단다.

아마도 그날이 10살 일생일대의 위기가 아니었을까?

아래 일기는 아이가 적은 그대로를 받아 적었다.

 


2024년 11월 수요일. 날씨 맑음

나는 오늘 한가롭게 집에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미술 학원을 갈려했다.
승강기에 타고 문이 '탁' 닫혔다.
그러자
'어랏?'
위에 또렷이 '점검 중'이라 쓰여 있었다.
"어...?"
사실 집에 갈 때 승강기에서 기사님을 만나서 지하 1층에 점검 중 막을 내린 것을 보긴 했다.
그래서 미술 학원을 가려할 때도 승강기를 타도 되나 망설였다.
하지만 우리 집은 27층.
계단으로 내려가긴 학원도 뻔히 늦을 걸 알았고, 그러면 킥보드도 탈 수 없게 될뿐더러 너무 힘들어 학원은커녕 집에도 다시 못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안고 승강기에 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승강기에 갇혀버렸네.
나는'계단'으로 힘들어도 내려갈걸 이라고 후회했다.

엘베에 갇히자마자 나는 곧장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르르릉"
"어 예솔아?"

나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감동이던지.

엄마는 경비아저씨께 전화를 드린다고 하셨다.
그사이에 나는 비상벨을 눌렀다.

적막 속에 "따르르르르릉"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잠시 후 꺼져버렸다.

머릿속에 불안함이 가득 찼다.
숨소리는 더욱 커졌다.

다시 비상벨을 눌렀다.
"따르르르릉"

다시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때!

"네? 여보세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승강기에 갇혔다고 했다.
부모님께 연락은 했다 했고 그러자 전화를 받은 한 여자분이 아무 층이나 누르라하셨다.

나는 눌렀다.

하지만 도착만 했을 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자분이 열림 버튼을 5초 동안 누르면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근데 왜 안 열리니
"하 거참"
어이없고 속상하고 불안했다.

어느새 '불안이'가 되어 있었다.

여자분은 기사님을 불러주신다며 다시 전화를 나중에 걸어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얼마 못해 다시 비상벨을 눌렀다.

그 사이 여자분이 뭐 기사님을 부르신 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분이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다시 끊겼다.
그사이 원래 광고판은 꺼져있었지만

"번쩍"
불이 아무것도 안보일만큼 꺼졌다, 켜졌다.
광고판도 그제야 켜졌다.
나는 열림버튼을 다시 꾹 눌렀다.

"탁!"
열렸다! 나는 거의 울 뻔했다.
다음에는 승강기를 만나면 두렵고 불안할지 몰라도 난 승강기에서 빠져나왔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일기를 읽는데, 그때의 긴박함과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0살짜리 치고 표현이 제법이라 조금 놀라기도 했다.

폭풍칭찬과 함께, 일기가 쌓이면 너의 일기로 책을 만들어 주겠노라 약속했다.


내 작가의 서랍에 쓰다만 초고 쓰레기들이 가득 있건만, 그냥 머릿속이 멈춘 듯하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아이의 일기를 옮겨 적은 것은 정말 아니다.(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다)

엄마가 글 쓰는 브런치에 올려주기로 약속해서 약속을 지키는 중인 걸로 보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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