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물론, 그전에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이 포함된 피드를 올리기도 하고, 대학생 때는 군대 간 동기 및 선배들에게 편지도 잘 써주었어요.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반성문도 많이 썼습니다.
저런 글들은 꾸준히 썼다고 볼 순 없기에, 지금처럼 평상시에도 글감을 생각하며 쓰는 본격적인 글쓰기는 아무튼 초보에 속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초보 주제에.
이곳 브런치는 그래도 꽤나 글로 방귀 좀 뀐다는 분들이 계시기에 제 글이 그저 아이가 까불듯 귀엽고 웃기기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제 생각을 쓰고 싶었고, 이미 '작가의 서랍'에 잠자고 있던 주제입니다. 방금 급조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제 생각에 저는 글쓰기에 아주 약간의 재능이 있는 것 같단 말이죠.
아, 오해는 말아주세요. 현재 객관적으로 잘 쓴다고 생각한다는 게 아니에요.
약간의 재능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다는 겁니다.(기대하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의심하고 있는 것이 더 제 생각에 가까운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의심하게 된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려 볼게요. 일리가 있는지 한번 같이 봐주실래요?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내가 쓴 글을 첨삭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글은 그 수업을 통해 내가 적는 첫 번째 글이었고, 즉 첨삭을 받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브런치 작가도 되기 전이기에 걸음마도 시작하지 않은, 글쓰기 아이였던 셈이다.
(지금도 아이이긴 하다. 지금은 걸음마를 뗀 걸까? 어쨌든)
그 글은 나의 브런치에도 있는, 다름 아니라 쿠팡 아르바이트 경험에 대해 쓴 글이었다.
반말로 써 내려가던 글 중간에, 존댓말을 쓴 부분이 있었다. 마치 일기처럼 써 내려가다가 갑자기 독자가 있는 것을 알아챈 것 마냥,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존댓말로 적었다.
글 하나 쓰고는 그것에 대한 인정욕구가 독수리 날갯짓 마냥 펄럭거릴 때여서, 아는 언니에게 글을 읽어달라고 보냈다. 지인은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소감과 함께, 그런데 이 존댓말 부분이 생뚱맞다는 비평을 남겨 주었다. 나 역시 그 부분이 조금 어색한가? 생각하고 있던 터라, 냉큼 원래 글의 말투인 반말투로 고쳐 적었다.
혹시, 뒷 내용 짐작 가시나요? 잠시 생각할 시간 드릴까요?
You can guess!
그 글을 후에 글쓰기 선생님께 첨삭을 받았고, 정확히 그 부분. 내가 본능적으로 존댓말을 썼다가 지인의 의견에 따라 반말로 고쳐 쓴 그 부분을, 존댓말로 고쳐 쓰면 어떻겠냐고 첨삭하셨다.
와 소름.
그 작은 에피소드로 재능 있다고 생각했냐고요? 이게 다냐고요? 네, 이게 다입니다.
다 자란 아이에게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지만, 누워있는 아이는 뒤집기만 해도 찬사를 보내고, 걷기라도 하면 눈물을 흘리잖아요? 저 역시 누워서 버둥거리는 아이에 불과한 상태였기에 걷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았을 때, 혹시 나 글쓰기 천재?라는 생각으로 의식이 흘렀습니다.
새벽 4시까지 몰입하여 글을 쓴 어느 날에 올린 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에피소드에 내 생각을 더하여 기승전결로 마무리하고 싶어 얼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무리하여 올린 글. 그런 글들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어서 아니, 혹시 설마 어디 있는지 몰랐던 재능이 여기에 있었나? 이런 생각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껏 저의 글을 그래도 종종 읽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저는 당연히 천재는 아닙니다.
부족한 독서로 인해 머릿속에 책이 많이 쌓여 있지 않고, 꺼내 써먹을 것이 많이 부족합니다. 글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할 때마다 놀라요. 나는 국어시간에띄어쓰기 공부 안 하고 뭐 했을까?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그래서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글쓰기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네요. 여기 혹시 왕초보님 계신가요?
난감하네요. 브런치에는 나름 글 좀 쓴다는 분들이 계신 곳이라, 제가 뾰족하게 정한 제 글의 독자가 되어 주실 분들은 여기에 없을 수도 있다는 점으로 문득 생각이 흐르네요.
어쩌죠? 써요 말아요?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왕초보라고 하고 1년 뒤 초보가 되어 있을 저를 생각하며 몇 가지만 적어 볼게요.
1. 쉬운 글을 써라.
브런치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고, 끝까지 읽는 글들은 술술 읽어지는 쉬운 글들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경험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담백하게 써 주신 글들에 몰입된다. 어려운 어휘, 무슨 뜻인지 생각해야 하는 표현들이 적힌 글들을 보면 "와 작가님의 필력이 부럽다. 지식이 많으신가 보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진짜 재미있다."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제로 끝까지 읽기 어렵기도 하다. 이것은 부족한 나의 문해력을 탓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내가 읽은 글쓰기 책들에서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 맞다고 생각한다.
2. 솔직하게 써라.
글을 쓰면서도 솔직하지 못하다면, 자신의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주로 남기는 인스타그램과 뭐가 다를까. 독자는 저자의 꾸며진 자랑을 읽고자 글을 읽는 게 아니다. 내가 끌리는 글들은 단연코, 솔직함이 묻어 나오는 글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에 반해, 아직 나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질소가 내용물 보다 많을 정도로 부풀려진 포카칩과자봉지처럼 쓰고 있진 않지만, 케이크 위에 올려진 과일처럼 설탕 코팅된 과일정도는 되는 것 같다. 사실은 싱싱하지 않으면서, 설탕으로 반지르르하게 코팅된 듯 한 과일말이다. 시든 과일도 나고, 케이크에 얹힌 채 팔리고 싶어서 번듯하게 설탕물을 묻힌것도 나다. 나의 어떤 점에 대해서 쓰던, 좀 더 솔직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다.
3. 선명하게 써라.
나는 귀가 얇다. 다툼이 싫다. 상처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 비난받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들이 겹쳐져, 마치 회색 같은 글을 쓰게 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이런 식의 말은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ox퀴즈로 치면, o의 진영도 x의 진영으로도 가기 싫어서, 진영을 가르는 가느다란 줄 위에 까치발로 서있는 꼴이다. 적어도 내 생각을 글로 쓴다고 하면, 어쨌든 내 생각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러다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는 글을 쓰란 의미가 아니다. 반대쪽에 대한 비난 없이, 한쪽으로 치우쳐진 생각이라 할지라도, 내 생각은 이러하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방어 기제가 글을 쓰면서도 불쑥 튀어나와서, 뭔 문맥에 맞지도 않는 말로 구구절절 또 변명해대기도 한다. 내가 가진 생각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눈치 보지 말고 쓰자. 온갖 색깔을 다 섞어서 회색 검정이 되지 말고.
이 외에, 겸손하게 글을 쓰자, 누군가 읽고 기분 나쁠 글은 쓰지 말자. 이 정도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 원칙이다.
이제 기승전결에서 '결'을 쓸 차례이다.
나는 '작가'란 타이틀을 놓고 싶지 않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똑똑한작가님들 사이에 어떻게든 '찡겨' 있고 싶다.
그리하여 글쓰기라는 이 괴롭고도 즐거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마무리가 약한 것 같다. 사색을 통한 나의 통찰을 펼치고 싶은데, 뭐 없다. 어쩌겠는가. 이까지가 내 현재 실력인 나는 초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