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의 ‘늘봄 탈출’ 사건
그때는 점심시간이었다.
정확히는 밥을 일찍 먹은 아이들이 ‘노는 시간’이라 부르는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
오늘도 매운 김치부터 다 집어 먹었다.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며 식판을 기울여 국물을 마신 S는 매일 먹는 3개의 물약을 먹고 양치질을 마친 상태였다.
S는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 중 하나다.
교실의 1/3을 차지하는 공간에 허리높이의 사물함 8개를 ㄱ자로 연결하여 S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아지트 같기도 하고 오피스 같기도 한 이 공간을 얻기까지는 같은 반 친구의 어깨를 깨물어 일주일간 학급에서 분리된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담임교사가 S의 정신과 병원 진료에 동행하는 여정이 그 뒤를 따랐다.
책상과 의자가 결합된 형태의 S의 책상은 사연 많은 그 공간에 쏙 들어가 있다. 자기 영역이 소중한 S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다. 교실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생활하는 셈이다.
한참을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튕기듯 교실 앞으로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S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살폈다. 전에 친구의 어깨를 물었을 때도 너무나 기습적이었으니까.
1학기만 해도 무조건 앞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밀어 젖히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던 S였다.
그날은 달랐다.
장군동상처럼 두 다리를 벌리고 내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덥석, 희고 크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내 손을 잡더니 복도를 거쳐 계단으로 내달렸다.
힘도 좋지. 이미 고학년이니 선생님의 체중을 한참 넘어섰다.
계단이라 위험할 것 같아 속도를 늦추려고 나도 모르게 잡힌 손을 잡아당겼는데, 그게 어째 끌려가는 강아지마냥 보였던 건지.
하필 층계참에 서 있던 호랑이 선생님의 눈에 띄고 말았다.
“종 쳤는데 뭐 해! 빨리 안 들어가?”
불호령에 막무가내로 내려가려던 S가 주춤했다.
더불어 손을 잡은 채 뒤로 슬쩍 당기고 있었던 나도.
사실 “지금 나가면 안 돼.”하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급하게 S가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가 더 궁금했으니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의 의미는 지금 S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기회는 날아갔다.
S의 탈출 시도는 고함소리에 가로막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S는 멍해진 얼굴로, 나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왔다.
넌 그렇다 해도 왜 내가 혼난 학생이 된 것 같니.
얼마 전 현장체험학습 가던 날도 출발하는 순간에 사라져서 모두를 놀라게 했었던 S였다. 매일 가는 늘봄교실에 신발까지 벗고 편안하게 앉아 있었던 걸 발견해서 다행이었지. 이번에도 1층에 있는 늘봄교실에 가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확인해보려 했는데.
‘안돼’나 ‘다음에’, ‘나중에’와 같은 결과와 마주치면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에~”하는 불편한 소리를 낸다. 계속 기분이 진정되지 않으면 텐트럼이라고 하는 ‘분노발작’이 나타난다. 드러누워서 울기, 발차기, 주먹으로 근처에 있는 사람 때리기, 꼬집기, 머리로 박기, 물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앞뒤 보지 않고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면 멍이 크게 들기도 한다.
S가 학교에서 유명인이 된 건 이 때문이다.
잠깐 걱정했는데 아지트로 돌아와 앉은 S는 친구가 갖고 놀던 새 장난감, 슬라임에 금세 마음을 뺏겼다.
작은 방울을 만들고 터뜨리더니 곧 차분해졌다.
S의 책상에는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의 사진카드가 여러 개 붙어 있다.
보통 그림교환의사소통체계(PECS)라고 하는데 말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대체의사소통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간단한 선그림이나 픽토그램을 이용한다. S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일반적인 투명 유리컵 사진은 안된다. ‘S가’, ‘학교에서’, ‘실제 사용하는’ ‘그 볏짚색 물컵’ 이어야 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S와 보내는 시간만큼 늘어난 카드로 책상이 좁아져서 그때그때 사용하는 카드를 다르게 붙여주고 있다. 카드를 집어 들어 국기에 대한 경례 하듯 가슴에 품는다. 그러면 물이나 간식, 장난감을 가져다주거나 함께 그 장소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내밀어야 맞겠지만 집어든 카드를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직 좀 어렵다. 규칙과 반복이 대부분인 학교생활이기에 ‘지금’ S가 보유한 카드가 무엇인지 맞히는 것은 내게 그리 어렵지 않다.
다시 돌아온 점심시간.
이번에는 좋은 시간을 골랐다.
5교시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았다.
앞문이 열려 있는데도 나가지 않고 멈칫거린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선생님한테 보여줘.”
했는데 마음에 드는 카드가 없었던 모양이다.
다정하게 손깍지를 낀다. 통통하고 따뜻한 손. 가자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였다.
S가 멈춘 곳은 낮에는 동생들의 교실인 늘봄교실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S는 늘 하던 대로 신발을 벗어던지고 교실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작은 동생들 틈에 앉아 있으니 커다란 눈사람 같다.
교실에는 잠시, 긴장이 흘렀다.
동생들은 ‘커다란 형’의 등장에 입을 벌리고 있었고 담임선생님과 실무원도 동작을 멈추었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존재감이다.
잠시 후 실무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제가 같이 있을게요.” 하고 내가 양해를 구하자 그제야 표정이 풀어진다.
정지화면이던 교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S가 늘봄교실에 오면 제일 좋아하는 블록 상자가 없다.
늘봄시간에는 책상도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는데 오늘은 그대로다. 안 보이던 사람들도 있다.
자그만 눈을 천천히 굴린다.
평소의 늘봄교실과 다르다는 걸 눈치챘을까.
뒤따라 달려온 우리 반 사회복무요원이 어느새 뒤에 서 있었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나는 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으니.
S가 앉아 있는 늘봄교실의 자리와 교실 팻말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S와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를 하는 중이었다.
자기 공간이 중요한 S에겐 그 편이 나아 보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도, S가 조금만 몸을 돌려도 교실 안에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일어난다.
주변의 사람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빨리 일어나.
지금은 늘봄 시간이 아니야.
재촉해서 너를 데리고 나가면 교실은 평화를 찾겠지만 너의 평화는 사라지겠지.
햇빛을 등진 채 덩그러니 앉아 있는 S를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으니 S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선 벽이 된 느낌이다.
시선이 마주쳤다 흩어진다.
다시 부딪쳤다가 또 비껴간다.
팔을 뻗고 “에~”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눈썹도 처지지 않고 있다.
시선은 멀지만 이제는 다가가도 되겠다.
“S. 이제 교실로 갈래?”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었다.
묵직한 손이 손바닥 위에 턱 올라온다.
그대로 올 때처럼 손깍지를 끼나 싶었는데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뛰어가더니 털썩 앉는다.
벗어 놓은 신발을 주섬주섬 신는다.
후,하고 안도하는 순간.
달린다.
친구의 어깨를 물었던 그 빛의 속도로,
유난히 긴 복도를 달린다.
S의 뒤를 선생님이,
그 뒤를 사회복무요원이 따라 달리는
릴레이다.
흔들흔들 휘청휘청하는 둥그런 등.
왜 네 표정이 궁금할까.
히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눈이 사라질 듯 웃는 하얀 얼굴, 다 알거든.
S의 책상에 카드가 하나 늘어났다.
‘늘봄교실에 가요.’
사진은 늘봄 교실 중간에 앉아 있는 너.
늘봄교실에 가는 시간에만 준다는 규칙이다.
늘봄교실에 갈 때까지 소중하게 가슴에 품었다가 도착하면 다시 선생님에게 돌려준다.
그렇게 진심이었던,
점심시간 응원 없는 복도 릴레이는 무승부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