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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냄새로 가득 찬 아이의 밤

by 날갯짓


엄마, 나 늙어서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죽으면
내 무덤에 엄마 옷 같이 넣어줘.
나 꼭 그 옷으로 덮어줘.


머리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홉 살 아이,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날 것의 말에 스윽 베인 듯 놀라 아이를 내 무릎 앞으로 당기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잠자리에 잠들기 전에 옆자락에서 사부작거리며 놀던 막내아이가 느닷없이 유언 같은 말을 던졌고 나는 그 말에 데인듯 화들짝 놀랐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를 읽었을 리도 없고 그 이야기를 알리는 더욱 만무한데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런 얘기를 해?


그냥 엄마 옷냄새가 너무 좋아서


왜 그런 얘기를 하는데?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나 늙으면


'나중에'를 길게 내빼며 몇 번이나 반복하며 얘기하는 걸 보니 아이가 생각하는 마지막이 두렵긴 하나 본데 아이의 얘기를 듣자마자


어미로서 복선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질까 봐 고개를 저어버렸다.


엄마냄새를 좋아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내 귓전에도 있게 하고 싶지 않은 문장. 내게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 그 문장을 다 들어내고 새까맣게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그 말은 며칠 동안 쉽게 떠나질 않았다.


날것의 문장, 있는 그대로의 표현인지 알면서도 쉽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매일밤 내 옷의 냄새를 맡곤 했던 아이는 아홉 살인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늘 옷을 여기저기 끼고 자는 아이.


세제 냄새야. 네 옷에도 그 냄새날걸?


절대 아니란다. 다른 냄새란다. 갓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들고 맡아봐도 세제냄새뿐인데 대체 아이의 콧구멍에 들어가 아이를 편안한 밤으로 이끄는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긴 출장에도 옷만 놔두고 가면 아이는 곱게 투정 없이 잠들었으니 고마운 옷이기도 했다. 온통 얼굴을 다 덮고 잘 때도 있고 그 큰 바지를 입은 채로 잠들기도 했으니.


아이가 던진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땐 엄마 없지.
엄마 하늘나라 가있을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삐져나오는 그 말을 다급히 멈추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아이가 당황하며 깜짝 놀랄까 봐 슬퍼할까 봐 그만두었다.


아이는 직관적으로 그 현장을 담아, 기분을 담아 순수하게 그냥 한 말일 것이다. 잠들기 전 냄새를 맡다가 그저 좋아하는 냄새라서 단순히 툭 던진 말일 텐데 뭘 마음을 그렇게 확장하는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아이가 생각하는 가장 두려운 순간에 함께하고 싶은 게 있다니 오히려 안도의 마음까지 든다.


아가, 엄마 옷 좋아해 줘서 고마워.

우리 아가, 엄마 사랑해 줘서 고마워.


이미 몇 벌은 아이가 하도 킁킁 거리며 냄새 맡는 바람에 해져서 몰래 버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엄마 잠옷이라면 좋아해 주는 아이라서 고맙다.


그나저나 생각의 끝을 일부러 쫓아가진 말아야지. 있는 그대로 아이의 마음만 받아야지 다짐해 보는 밤이다.


얼마전 버린 바지 ㅋㅋ


*추가


실시간 지금의 너


까만 잠옷 당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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