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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by 날갯짓

문장이 형태도 없이 떠돈다. 하나 집어서 첫 머리말에 근사하게 올려놓고 싶은데 도도한 첫 문장은 오늘도 쉽게 잡히질 않는다.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피해 가기가 바쁘다.

나의 글쓰기는 첫 문장을 내려놓기까지가 관건인데 그 마음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떤 날은 시심이 문장으로 술술 풀려나오곤 하는데 사실 그 시간을 위해 얼마나 서성이는지.


어떤 문장은 꽉 비틀고 비틀어 짜낸 오이지처럼 쪼그라진 문장이 되기도 하고

화려한 수식,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가식의 문장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누구나 감탄할 유려한 문장을 가져오고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정하고 정확한 문장을 가져오고 싶을 때가 많은 편이다. 때마다 다른데 비유를 잘 잡아채면 그 어떤 순간보다 뿌듯해진다. 이거지!

그러나 그 순간을 잡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나는 기회를 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찾아다니곤 한다. 카페로, 벤치로, 내 방으로...

누구도 없는 혼자만의 곳으로, 아니 사실은 누구나 있지만 누구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땐, 차순위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된다. 마음에 쏙 드는 한 문장 가슴에 담으면 그날 하루는 더 욕심부리지 않게 된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땐, 마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 발 끝, 시선 끝만 쫓아가느라 분주했던 것 같은데,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임을 알고 나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도 안되고. 또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는 것이 아이들의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내 앞에 다른 것들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노트, 연필, 시집 그리고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은 나의 안에 있는 날 것.


내게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 첫 마음이라고 해두자.


어릴 때부터 지금껏 내가 품고 있는 것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라서, 늘 이렇게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나라서 다행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

뭐가 됐든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문장 하나에 오래도록 머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툭 쉽게 내뱉고 나서도 한참 동안 떠나지 못하고 골똘히 그 문장 곁에서 바라보고 싶어 하는 첫마음


오늘도 그 순간을 위해 방으로, 카페로 들어선다. 카페 매일매일은 좀 과한가? 물음표를 던지곤 하지만 그 생각 주섬 주섬 다시 주워 담아 과감히 버리고는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시간, 나를 돌볼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이 정도면 뭐 써도 되지 않는가, 이정도 사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혼잣말을 되뇌며 문장 사냥꾼의 길을 걷는다.


오늘은 어디에서 어슬렁거려볼까. 숨바꼭질 술래처럼.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작은 종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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