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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19. 2024

싸우자. 사춘기.

사춘기 vs 사십춘기

(이번 글에는 비속어와 맞춤법 교정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라이킷만 날려주고 뒤로 가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나쁜 새끼들

 이 소리는 평일 아침 사춘기 아들들에게 투펀치를 당하고 씩씩대는 애미가 복화술로 내뱉는 소리이다.

공공 플랫폼인 브런치에 쓰기엔 부적절한 단어임을 알고 있으나. 저 단어 말고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심정을 대신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는 게 아쉽다.

안방문을 소심하게 닫고 아직 자고 있는 막둥이 딸내미 옆에 누워버렸다. 어이없게도 양쪽 눈에선 액체가 마구 나온다. 아직 딸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주책맞은 어깨는 자꾸 들썩거린다.


나의 알고리즘은 항상 사춘기로 귀결되기에 이제는 웬만큼 알고 있다. 아직은 천 번이나 흔들려야 하고 미성숙한 전두엽의 노예들이라 이미 흔들릴 만큼 흔들려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40년 넘은 느티나무가 된 어른이, 부모가 이해하고 품어야 할 대상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 머리로는 아는데 이만하면 단련될 만도 한데 사십춘기라 그런 건지 호르몬 대왕님이 오시는 그날도 아닌데 아직도 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해 감정이 프라이팬 위에서 팝콘이 되려는 옥수수 알맹이 같을 때가 있다. 그게 하필 오늘이다. 원 펀치였으면 한번 휘둘려도 다시 일어났을 건데 시간차 공격으로 투 펀치는 좀 세다.

투펀치 당한 썰을 풀자면 참 어이없고 내 얼굴이 침 뱉기라 도저히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주저리주저리 풀어내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한 건 이 새끼들은 자기들 혼자 훌쩍 큰 줄 알고 자신들이 날 선 감정을 앞세워 애미의 심장을 이쑤시개로 푸욱 찔러버리고 등교를 했고 아직 강철 심장을 못 만든 애미는 속으로만 비속어를 남발하며 눈물을 질질 짜고 있었단 말이다.




엄마, 일어나자.

세상 예쁜 오늘따라 누구들이랑 비교되게 더 이쁜 막내딸의 기상보고가 들린다. 사춘기 엄마의 시련을 마냥 한탄할 여유도 나에겐 사치이다. 난 5살 꼬맹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이 생명체를 위해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찍어내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급조한다. 방금 일어났으면서 다 안다는 듯이 오늘따라 더 꽉 안아주는 내 아이의 작은 어깨에 잠시 기대어보니 생각이 난다. 저 새끼들도 엄마 아니면 안 된다며 두 팔 가득 매달리던 때가 있었는데.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10분 달리고 3분 걷고 다시 12분 달리기 코스.  

어제부터 시작된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는 펀치 당해 굳어가는 심장을 얼음 마사지로 깨우는 임무를 맡기기에 제격이다. 처음 해보는 10분 달리기는 숨소리를 거칠게 만들고 종아리의 근육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머리는 오히려 안개 걷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선명해지게 만든다. 딱 적절한 타이밍에 런데이 아저씨가 응원해 준다.

대단하다고.

달리면서 다짐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사춘기 할아버지라도 이번만큼은 완패당하지 않으리.

이 애미도 이제 너희가 찌른 이쑤시개에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 찬바람을 맞으며 달리며 감정을 정리할 것이고, 너희들의 뒷담화를 글로 쓸 것이며, 더 나은 어른의 모습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소심하고 쪼잔할지라도 복수를 할 거야.

 



 너희들은 뭐가 문제인지 인지도 못한 채 등교를 했지만 하교를 하면서 알게 될 것이야.

너희가 쓰고는 팽개쳐버린 수건이며 벗어버린 옷가지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전히 방에서 뒹굴 것 이니라.

애미가 손수 챙겨준 아침밥을 반항심으로 안 먹고 간 것을 후회할 것이야. 집에 와선 간식으로 먹을 게 없을 것이거든. 엄마가 다이어트를 포기하고 다 뱃속에 넣어버렸어. 저녁밥은 차려는 줄게. 근데 밥 먹자고 몇 번씩 애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야. 내일 입을 옷은 알아서 빨래 더미에서 찾아서 입고 뒤집어 벗어서 빨래통에 던져버린 양말도 다시 뒤집어서 신어야 할 거야. 엄마가 세탁한 너희 옷과 뒤집어진 채 세탁 된 양말을 방 한구석에 그냥 가져다 두기만 할 거거든.  안 춥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알아서 팔 짧아진 작년 패딩을 입던지 팔팔한 열기가 남아돌면 애정하는 후드집업만 입고 버티던지.




알아.

이번에도 엄마가 결국은 지겠지. 아니 져주겠지. 배고프단 소리에 냉장고에 있는 것을 줄줄 읊으면서 너의 선택을 기다리고, 엄마 내 축구 기술 좀 봐바라고 하면 뭔지도 모르겠는 발재간을 보며 쌍따봉을 날리겠지.

하지만 완패는 당하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적어도 5대 4까지는 해볼 거야.

엄마도 지렁이는 아니지만 꿈틀 한다고. 흔들린다고. 너희들도 이번엔 손톱만큼이라도 느끼는 게 있길 바라.

근데 잊지 마. 엄마도 너희들을 멀쩡히 등교만 하면 칭찬해 줄 수 있는 다정한 관찰자 스킬을 배우려고 노력 중이라는 걸. 아휴. 이걸 알면 사춘기가 아니겠지. 많은 걸 바랐다.

오늘 예정에 없던 글감을 제공해주고 글 하나 더 발행하게 해줘서 고오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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