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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렁이 Nov 16. 2024

두근두근 놀이터

아이들의 작은 사회 놀이터.

3년전 썼던 글을 퇴고하여 올립니다.


오늘도 9살 된 아들과 하교 후 학교 앞 놀이터에 간다. 놀이터에서 아들은 신이 나서 그네를 탄다.

하지만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맴돈다.

‘오늘은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아들은 놀이터에 갈 때마다 신이 나서 두근두근 하겠지만, 엄마인 나는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하다. 혹시라도 어린아이를 밀진 않을까... 순서를 지키다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떼를 쓰지 않을까... 좋아하는 그네를 독차지하려고 하진 않을까, 학교친구들이 우리 아들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해진다. 실제로 여러 상황들을 겪어봤다.

“얘는 왜 욕심부려요?” “울음 병 걸렸나 봐” “쟤는 혼자 못해요?” “쟤는 2학년인데 왜 저래..?”

어린아이들의 너무나도 솔직한 말에 혼자 상처받는 일 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 스스로 단단해져야지 마음먹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놀이터야말로 또래들과의 발달이 적나라하게 비교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터에 가기가 겁이 날 때도 있다. 나에게는 놀이터가 세상에 직면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는 너무 짧은 놀이터에서의 30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길었다.

놀이터에 찾아온 가을속에 덩그러니

어느 날은 3학년 형아들이 미끄럼틀 위 지붕에 올라가는 걸 눈을 반짝이며 아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날다람쥐처럼 폴짝폴짝 잘도 뛰는 형아들을 보며 아들은 저도 하고 싶어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은 하고 싶은 마음만 앞설 뿐 그곳을 오르진 못하고, 계속 징징대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아들에게

“야, 너 몇 학년이야? 넌 못해 저리로 가~ ” 라며 말을 건넸다. 아들이 대답도 안 하고 계속 떼를 쓰니 나에게 물어본다

“얘, 몇 학년이에요?

“응 2학년이야” 하니

“2학년이면 할 수 있어~내가 알려줄게” 라며 호기롭게 시범을 보여준다.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지만 아들이 잘하지 못하자 고맙게도 조금 낮은 곳으로 가서

“여기 잡고 뛰어내리는 거부터 연습하자~ 이걸 성공해야 저기 높은 곳에서 성공할 수 있어”라고 설명해 줬다. 그런데도 아들이 잘 못하고, 짜증 나는 마음을 계속 울음으로 표현하니, 그중 한 아이가 그런 모습의 우리 아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얘 도움반이에요?”

“응 도움반이야”

“얘 장애인 이에요?” 라는 그아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옆에 다른 아이가

“얘들아~얘 이거 내일 돼도 성공 못 할 것 같아~ 우리끼리 그냥 딴 데 가서 놀자”

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다다다 흩어져서 놀고 있었다.


‘응~ 동생은 자폐성 장애가 있어서 불안함이 커~ 그래서 조금 천천히 배우고 있어~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해내는 멋진 아이야’

라고 내 아이의 입장에서 말해 주는 멋들어진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만의 작은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30분을 낑낑대더니 그 낮은 담을 올라가 뛰어넘기에 성공하고는 해맑게 웃으며 너무나도 기뻐했다. 나도 너무 기뻤지만,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우리 아이가 못하는 아이로 보이는구나 하는 마음에 심란하여 온전히 그 기쁨을 같이 누려 주지 못했다. 다음번에 그 아이들을 또 만나면 우리 아들이 30분 정도 연습하고 성공했다고 꼭 말해줘야지 하고 되뇔 뿐이었다.


그날, 잠시 땀을 식혀주던 바람이 느껴졌을 때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 많은 놀이터에서 나와 아들만 덩그러니 내 아들의 세계에 놓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매일 놀이터에 갔다.

매일 가다 보니 만나는 사람의 얼굴도 익숙해지지만 누구 하나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와 아들만 그 공간에서 겉도는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친해져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간식을 먹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아들이 정복욕구가 생겨서 놀이기구에 매달리고 올라가려고 하는 걸 감통치료 한다 생각하며 도와주던 날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1학년 남자아이들이 우리 아이가 하는 걸 보고 따라 하며 올라가고 매달리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내 뒤통수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위험해! 올라가지 마~!!!!”라는 그 아이들 엄마의 말이었다.

나에게 한말을 아니었지만, ‘왜 저 엄마는 위험한 걸 말리지 않고 부추기고 있지?’ 하는 그들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져서, 결국 간식으로 아들을 꼬셔서 집에 데리고 왔다.

그날은 나와 아들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남들 눈에 갇혀버려서 내 아이를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아이가 하고 싶은걸 안전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면서 해주면 되는데, 왜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느라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포기하게 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사진출처 pixabay

그러던 중, 그들이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게 내가 먼저 다가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놀이터를 갔던 날이었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 아이만 바라보며 놀아줬겠지만 그날은 주변을 좀 살펴봤다. 자주 마주치던 아이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분이 먼저 눈인사를 해주셨다.

나도 다가가 인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아들과 같은 반인 여자아이의 할머니셨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아이들은 크면서 점점 좋아진다 하시며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 놀자고 친근하게 우리 아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처음이 어려웠지 다른 엄마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니 모두 친절히 받아주며 학교이야기도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들이 갑자기 떼를 쓰거나 순서 기다리는 걸 힘들어할 때면 본인 아이들에게

“너도 6-7살 때 떼쓰고 그랬지? 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거야~친구도 지금 배우는 중이니까 조금 이해해 주자”라고 설명도 해주곤 했다.

아들도 제법 순서도 잘 지키고 1학년동생들에게는

“30번 타고 동생타자~”라며 양보도 해주게 되었다.

물론 동생들은

“ 30버어어언 이나 더 탄다고?” 하며 장난 섞인 불평을 말하기도 했지만, 아들은 30을 딱 센 후에

“동생차례!” 하고는 그네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 귀여웠고, 보고 있으면 흐뭇했다. 아들은 놀이터에서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같은 반이라는 또 다른 여자아이와 만나서 놀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ㅇㅇ는 기다려주면 혼자 할 수 있어요~” "오늘 클레이를 했는데 ㅇㅇ는 만들기보다 클레이를 쭈욱~늘리는 걸 좋아했어요~나도 그거 좋아해서 ㅇㅇ가 왜 좋아하는지 알아요~”

“오늘 산에 올라갔는데 ㅇㅇ는 맨뒤에서 도우미 선생님이랑 같이 오긴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또래친구를 통해 듣는 아이의 학교생활은 너무나도 반가웠고, 신기했다. 또 너무 예쁘게 말해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하루는 그 아이 엄마가 나에게 이런말을 해주었다.

“아빠, 우리 반에는 ㅇㅇ라는 특별한 친구가 있어. 그래서 아빠가 이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며 나에게 전해주었다.

정말 정말 고맙고 우리 아이를 그렇게 바라봐주는 그 아이의 시선이 너무나도 예뻤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들의 행동을 나에게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내가 아들에게 “친구한테 인사해야지~”라고 말하면 “굳이 인사 안 해도 돼요~ㅇㅇ가 아까 저 봤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타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한 자폐성 장애의 특성상 인사를 잘 안 하는데 그 아이가 나보다도 더 아들의 입장에서 헤아려 준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일반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그 아이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들이 우리를 불편해할 거야.’ ‘우리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지레짐작으로 생각하며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장애가 있는 내 아들에게 열려있었고, 더 친절한 시선으로 내 아이를 바라봐 주기도 하는데 말이다.

남들 시선에 갇혀서 나만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내 아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서 고립 됐다 느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내가 열린 시선으로 그들과 함께하면 그들도 열린 시선으로 내 아들과 함께해 주고, 아이의 시선에서 같이 바라봐주며 이해해 주는데 그동안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니 더 이상 놀이터 가는 것이 두려워서 두근두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왜 떼를 쓰는지 왜 화가 났는지 더 잘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놀이터에서 울음 떼로 주목받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시선에 아이를 가두지 말고,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봐주니 아이가 조금 이해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수월해졌다.


시선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눈총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눈빛이 되기도 하며.,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맞추니, 그것은 고립된 나를 꺼내주는 눈인사가 되기도 하니말이다.

내일도 아들과 나는 놀이터를 갈 것이다. 재밌는 일, 신나는 일, 상처받는 일 모두 있겠지만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놀이터에서의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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