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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Nov 18. 2024

보셨나요, 흑백 요리사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

  <대문사진 출처 :  Pixabay>


 "엄마, 흑백요리사 알아요?"

 하교한 작은 아들이 청소기 돌리는 내게 뜬금없이 묻는다.

 "아니, 모르는데."

 짐짓 모르는 척 답한다. 사실 유튜브에서 예고편을 본 적 있기 때문이다. 왜 굳이 요리사를 흑과 백으로 등급을 나누고 대결을 펼치나, 지레짐작하고는 미디어에서조차 계급을 나눈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그거 엄청 재미있대요."

 "아, 그래? 친구들은 어떻게 봤지? 뭐가 재미있대?"

 "요리하는 거래요. 집에서 봤대요. 넷플릭스로요. 우리도 보면 안 돼요?

 작은 아들이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때 하교한 큰 아들이 인사하고서 다짜고짜 하는 말.

 "엄마 흑백요리사 시즌 2 할 거래요."

 이 은 또 무엇인가.

 "하하 그게 뭔데?"

 또 모른 척.

 "엘리베이터 타운보드 화면에 나오더라고요. 그거 재밌대요."

 "맞아, 우리 반 애들도 그거 다 봤대."

 "엄마, 우리도 넷플릭스 보면 안 돼요?"

 아이들의 맞장구에 서둘러,

 "그거 돈 내서 가입해야 할걸. 잘 모르겠는데."

 우리는 넷플릭스가 없고 또한 보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는 냉정한 말로 아이들의 기대감을 저버린다. 아이들도 그 말에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 부부의 휴대폰에는 넷플릭스가 없다. 그나마 돈 내고 가입한 것은 티빙. 이것조차 올해 KBO야구가 유료화되면서 야구를 보고자 큰맘 먹고 결제한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라니. 그 예능하나 보자고 넷플릭스를 깔아야 한단 말인가.




 남편은 기꺼이 아이들을 위해 넷플릭스에 돈을 내고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종종 내게 넷플릭스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 및 예능을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 알아? 그거 요즘 인기 많대. 모든 사람들이 다 본다던데, 엄청 재밌나 봐."

 "드라마라던데. 김수현인가? 눈물, 뭐. 여보 알아? 그거 재밌다고, 밥 먹을 때마다 사람들이 얘기하더라고."

 "흑백요리사인가. 백종원 나온다고 하던데. 그거 요즘 흥미로운가 봐. 그 얘기만 하던데?"

 회사 사람들끼리 점심 먹을 때마다 하는 얘기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예능 이야기인가 보다. 특히 휴대폰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 혹은 티빙 등. 서로 재미있는 프로그램 얘기를 할 때마다 그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보고 한 직장동료가 말했다.

 "솔솔씨, 흑백요리사 봤어? 안 봤지? 설마 아직도 넷플릭스 안 깔은 거 아냐?"

 비웃듯이 미소 짓는 동료 앞에서 남편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으며 썩은 웃음을 날렸다고 했다. 아, 불쌍한 남편이여.


 사실. 최신 드라마와 예능을 모르는 남편이 불쌍한 건지 넷플릭스에 돈을 안 내어 보지 못하는 게 불쌍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남편이 드라마와 예능에 관심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남편은 그저 스포츠. 그래서 종종 축구경기 및 올림픽을 챙겨보기를 즐거워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지점은 여기.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는 스포츠를 아내가 집에서 보지 못하게 했다는 거.


출처 : Pixabay. BiljaST


 의아해한다면, 특별히 미디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청소년 때 부모님 몰래 들었던 라디오는 미디어가 아니고, '무한도전'은 예능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그건 아이들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미디어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진다. 결혼하면서 아이는 미디어로 키우지 않겠다는 나름의 교육철학(?) 아래 큰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미디어를 멀리했다.

 미리 남편에게 엄포를 놓았다. 아이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면 말도 늦게 트이고 아이 발달에도 안 좋아. 무조건 미디어는 멀리. 책을 많이 읽히자,라는 교육방침아래 남편도 어쩔 수 없는 합의로 따라야 했다. 그때는 어디를 가도 식당에서 휴대폰으로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며 밥을 먹는 아기들을 종종 봤다. 하지만 우리는 동화책, 장난감을 들고 혹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외식했다. 그래서일까. 가정에서 미디어를 접할 수 없던 우리 아이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광고 나오는 TV라든가 전광판을 통해 영상을 접하게 되면 정신을 잃고 초집중을 했다.

 저게 뭐지,라는 표정으로. 새로운 신세계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없어요, 하며.

 하물며 국가대표 축구경기나 올림픽이 열리던 때에 남편은 도저히 보고 싶은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시댁에 가서 보고 온 적도 있다. 왜 아침부터 집에 오냐,라는 시어머님 말씀에 남편은 윤슬이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해요,라고 아내를 고자질하면서까지 홀로 편히 축구를 봤다. 물론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렇다고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가. 아니다. 거실 중앙에 떡하니 마련되어 있다. 결혼 당시 구입한 신제품 LED 42인치 TV. 하지만 아쉽게도 큰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TV는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대신 그 옆의 커다란 편백 책장에 책들이 하나씩 쌓여 갔다. 큰 집으로 이사 갈 때도 다른 이들은 넓은 거실 평수에 맞게 새 TV를(그 당시 신제품 65인치) 구입할 때, 우리는 그 42인치 TV를 들고 이사했다. 넓은 거실이라 크기가 작아져버린 TV는 볼품없었지만(오는 사람마다 TV가 작지 않냐며 안타까워했다.), 어차피 켜지 않는 텔레비전보다는 큰 책장에 책들을 채워 보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었다. 


▲ 우리 집 거실의 한 벽면


 양 벽면에(거실 아크릴벽면 따위는 무용지물) 가득히 들어선 책장과 거실 중앙에 있는 기다란 테이블. 이렇게 글로만 써도 황홀 그 자체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가. 그토록 바라던 거실서재화. 물론 나의 꿈이었으며 남편은 그저 묵묵히 거들뿐.

 여하튼 거실서재화로서 아이들은 자라면서 책을 밟고 다니고 책을 읽으면서 자랐다. 지식은 둘째 치고, 그저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 기특하고 스스로 책을 보는 게 흡족스럽다.


 시간이 흐른 만큼 아이들이 자라고. 아직도 텔레비전을 안 보냐고. 그건 또 아니다. 큰 아이가 4학년이 되면서 보여주기 시작한 건 EBS 세계테마기행. 원체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아빠 덕이다. 어쩌냐. 아이들이 TV의 존재를 알게 되고 보고 싶어 하면서 선택한 것이 EBS. 

 아이들이 '세계테마기행' 보여주세요,라고 하면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작은 42인치 TV를 뚫어져라 봤다. 이번에 어느 나라일까, 저 음식 맛있겠다, 오 저곳은 우리 꼭 가보자, 우리가 여행 갔던 곳이다, 이러면서. 가본 여행지는 다시금 추억하게 만들며, 가보지 못한 곳은 앞으로 가 볼 여행지로 체크해 둔다. 가 볼 여행지, 미리 보는 것도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세계테마기행으로 시작된 TV의 프로그램 선택지는 최근에 하나 더 늘었다. 그건 야구. 자세한 야구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한다. 결국 5일 동안 잠자던 TV는 주말에 한두 번 세계테마기행 혹은 야구경기로서 책임을 다할 뿐이다.




 미디어는 비단 TV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집에 TV 없는 집도 많다고 한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등으로 각종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으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필요한 시간대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손 안의 미디어, 스마트폰. 편리한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단한 기계. 그런데 이 스마트폰이 참 골칫거리다.

 교육 정보를 얻기 위하여 들어가 있는 각 급의 오픈 채팅방. 채팅방에 있노라면 처음 시작은 동네 맛집, 학교, 학원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결국 부모들이 불을 뿜으며 톡을 나누는 것은 휴대폰 문제. 그 채팅방에서의 푸념과 원망은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들, 스마트폰 그리고 정부에게 향한다. 

 부모들이 아이 폰에 걸어 넣은 시간제한을 뚫고서 부모 몰래 휴대폰을 하는 것. 잠잔다고 해 놓고는 밤새 쇼츠 보는 것. 사용시간을 정해두면 다른 아이들은 무제한이라며 떼쓰는 것. 초, 중, 고 아이들의 연령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하는 하소연이다. 그런 얘기가 채팅방에서 나올 때마다 굳건히 결단한다. 스마트폰은 될 수 있으면 후에 주자고.


▲ 아이들의 3G 폰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폰은 3G폰. 하도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하길래 합의하에 손에 쥐어준 폰이다. 오랜만에 만지는 3G폰이라 사용법을 허둥지둥 댔지만 금세 기억을 떠올리고는(사실, 나도 20살이 됐을 때 사촌오빠로부터 쓰던 3G폰을 받았었다.) 아이들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아래하, 자가 있는 폰. 화면이 터치 안 되는 폰. 요즘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폴더폰. 벨소리조차 특이한 폰. 아이들은 그 점이 신기했는지, 아주 흡족스러워했다. 아이들의 반응에 스마트폰을 미룰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안심한다.


 이렇게까지 미디어를 멀리한답시고 엄마가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유행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에 관심 갖지 말고, 몰랐으면 해서 EBS와 3G폰을 쥐어줬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온갖 유행들을 통달하고 온다. 하. 한숨과 웃음이 나오지만 그게 재미있다면. 그저 그게 뭐냐고 묻고는 함박웃음을 지을 뿐이다. 지금도 작은 아들은 내 옆에서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이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하. 그저 웃지요.


글로벌화한 사회 속, 정보의 효과적인 이해와 이성적인 대처를 위해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더욱 주목받게 됩니다.


 송길영 저,『시대예보 : 호명사회』에 나온 글귀다. 알고 있다.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글로벌화한 시대 속에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디어, 가 필수적인 조건임을. 게다가 내년부터 AI디지털 교과서를 진행한다고 교육분야에서도 들썩이고 있다. 쫓아가야 하나 따라가야 하나, 이 미디어 시대를.

 

 미디어에 대해 옳다 그르다 왈가불가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이 여러 방면으로 접하게 되는 미디어를 통해 유행하는 가요, 쇼츠를 배우고 오더라도. 카톡도 안되고 스마트적이지 않은 3G폰을 갖고 있더라도. 책과 EBS세계테마기행(더불어 야구도. 남자아이라면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을 통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눈과 귀, 손과 발로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랐으면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우겨본다. 그러다 보면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분별력을 가지고 미디어를 접하게 되겠지.



덧.

제목은 흑백요리사인데, 언제 흑백요리사 이야기가 나오냐고 묻는다면 결국 우리 가족은 아무도 흑백요리사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이에요, 정말 맛집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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