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뭐든 오래 꾸준히 하지 못하는 편이다. 집 안에는 읽다 만 책이 많고, 100일만 따라 하면 영어 프리토킹이 가능해진다는 책도 먼지가 쌓여 있다. 미라클 모닝도, 아이들과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내자고 계획했던 일도 하다 말기 일쑤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하루키를 만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루키 씨는 매일 달리고 매일 쓴다. 성실하고 꾸준히 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하루키가 된 것일까? 그가 사는 방식이 부럽고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도 매일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이나 요리를 만들고, 한밤중에야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원고를 쓰는 생활을 3년 가까이 계속했다.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56쪽
처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쳤을 때는 반가웠다. 나도 막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라, ‘이 책을 읽으며 한 달 동안 더 열심히 달려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남몰래 많은 기대도 했다. '달리고 난 뒤의 깨달음을 쓸까? 함께 달리는 친구에 대해 써 볼까?'
클라이맥스까지 남몰래 그려 두었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린다. 그리고는 “무지개 작가님들 제가 드디어 해냈습니다!”라는 글을 쓴다. 데이식스 음악에 어울리는 상쾌한 마지막 장면까지 머릿속에 그려 두었다.
결과는 어땠는가? 9월 한 달 동안 내가 달린 횟수는 네 번 뿐이었다. 계획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늘 이렇게 넓다. 어느 날은 불굴의 의지로 집 밖을 뛰쳐나갔다가, 어느 날은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었다.
하루키처럼 매일 자신을 단련하고 싶다가도, 다음 날이면 ‘내가 마라톤을 나갈 것도 아니고, 세계적인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 나는 또 이렇게 하다 마는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스러웠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내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그녀들에게는 그녀들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46쪽
이 문장을 읽을 때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고, 그것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요즘 나는 특별히 새로운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다만 내게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내고 있다. (물론 책을 수십 권 써내고, 번역도 하고, 강의도 하며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하루키 씨에 비하면 그저 변명일 뿐이지만.)
점점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나이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쓰기와 달리기를 삶의 중요한 축으로 두고 사는 하루키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삶의 중심에 놓고 싶다.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65쪽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나는 책을 읽다 말기는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라도 결국 끝까지 읽어낸다. 아주 빠르진 않아도 완주하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달리기와 글쓰기도 그렇게, 내 속도로 완주하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무용한 일로 보일지라도.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56쪽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어떤 것을 오래 꾸준히 해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말없고 근면한 마을의 대장장이처럼' 말이다.
p.s. 부끄러운 고백 하나. 나는 이번에야 ‘마라톤’이 그리스의 지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혹시 나처럼 몰랐던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알게 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