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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달리기를 통해 마주한 내 마음과 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권의 책이 전한 울림

by 지혜여니

요즘 산책길에 나서면 어김없이 러닝족을 만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헐떡이며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달려가는 사람들을 본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도 뛰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문득 스친다.




마침 9월 무지개 모임의 선정도서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유명한 소설가가 왜 달리기에 빠져들었을까 궁금했는데, 좋은 기회였다. 얼마 전 지인 중 한 분도 이 책을 읽고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삶에 활력이 되었다며, 나에게도 꼭 달리기를 해보라 권했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왠지 책장을 펼치기 망설여졌다. 읽고 나면 정말 달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오히려 피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 장거리 달리기를 완주했던 경험이 있다. 매년 운동장 열 바퀴와 동네 한 바퀴를 끈기 있게 달리던 나였다. 빠르진 못해도 끝까지 해내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늘어난 몸과 나이 탓에 달리기엔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신 지난달부터 매일 빠르게 걷기를 시작했다. 40대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었다. 1시간쯤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로, 비 오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나섰다.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상하게 그 기분이 좋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걷고 나면 상쾌했다. 힘들어도 또 나가게 되었다.



빠르게 걷는 동안 내 안의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분노, 슬픔, 좌절, 억울함 같은 것들을 숨기지 않고 힘껏 내던졌다. 사람에게 쏟아낸 게 아니니 뒤탈도 없었고, 그저 공중과 자연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걷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감정이 정리되자 비로소 세상이 보였다. 오리와 새, 다양한 곤충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나뭇잎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까지. 그동안 내 안의 감정에 가려 흐릿하게만 보였던 장면들이 선명해졌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고, 더 먼 거리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마치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 설레었다.




걷다 보면 달리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러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렇게 걷기도 벅찬데, 왜 저렇게 달리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짧게 달려보았다. 숨은 금세 가빠졌고, 심장은 쿵쾅거리며 터져 나올 듯 뛰었다. 부끄러울 만큼 거친 숨소리가 들렸지만, 그 순간 ‘내가 살아있구나’를 실감했다. 아마 이 기분 때문에 사람들이 달리기에 빠지는 듯했다. 아직은 몸이 무겁고 뛰는 게 힘겹지만,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 느낀 건 내 몸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였다.




여전히 나는 달리기보단 빠르게 걷는다. 심장박동이 느껴질 만큼 걸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하루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참 신기했다.






책 속 하루키는 오래 글을 쓰기 위해, 자기 본업을 위해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매년 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 같은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졌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꾸준히 도전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내 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지냈음을 깨달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p.228)




아이를 보면서도 배웠다. 처음 철봉에 매달렸을 땐 1초도 버티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힘줄이 도드라지고 꽤 오래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농구공조차 무겁다며 던지지 못하던 아이는 이제 자유투도, 레이업도 거침없이 해낸다. 그때 나는 “거봐, 꾸준히 하면 다 되잖아!” 하고 손뼉 치며 칭찬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그런 말을 건네본 적이 없었다.



‘아이도 해내는데, 왜 나는 스스로를 못한다고만 단정 지었을까. 나 역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찾아왔다. 마치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시간은 걸린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들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된다. (p.244)






여전히 한계를 넘는 건 두렵고 자신감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몸을 지키고, 스스로 세워놓은 벽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글쓰기에도, 운동에도, 건강에도 꾸준한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채우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 조금씩 직면하고, 피하지 않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인식했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p.187)





지금은 빠르게 걷기를 꾸준히 이어가며 체력을 키우고, 내년에는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꾸준히 걷고, 조금씩 뛰며, 언젠가는 러닝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을 맞이하리라 기대한다.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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