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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할때..

마음에 머무는 시간.

by 김시선

한풀 꺾인 폭염에도 바닥에서는 열기가 피어오르고, 달리고 나면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버려 절대 하지 못하는 찬물샤워를 해도 30분은 지나야 진정되던 8월의 한가운데 날. 광복절에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에어컨 앞에서 사이클을 타고 홈트를 하며 체력을 만들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나가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방학 내내 하루 종일 아이들과 복 딱 거리는 현실에서 혼자 있고 싶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던 저녁시간 문을 열고 나가 달렸다. 아니 달아났던 걸까?

그렇게 나의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훌륭한 코치가 되어준 런데이라는 앱을 통해 조금씩 달리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나가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무엇보다 나의 일상에서 숨통이 트이며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달리는 동안은 정말이지 많은 생각들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뛰다 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일이라던지 바라는 일이라던지에 관해 자주 떠올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본적 없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과 필요한 일에 집중하던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좋았다. 몸은 달리고 있었지만 생각은 마음에 머무르는 것 같았고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KakaoTalk_20250928_221624022.jpg 변산반도에 여행중 새벽달리기대 찍은사진

달리기는 편안함을 박차고 나가 나를 힘들게 하는 행위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편안함에서 벗어날 때 이상하게도 진정한 자유함을 느끼게 된다. 1시간을 달리고 나서 땀에 흠뻑 젖은 옷이 등에 달라붙은 걸 떼면서 마무리 걷기를 할 때의 쾌감은 충만한 만족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좋다는 말이다.

달리기를 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나만의 기준들이 나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유지하는 장치라면 그런 것들을 깨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지금 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가 당장은 힘들고 숨이 차겠지만 그 후에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하면 뭐든 해보자는 태도를 갖으려고 노력 중이다.

못할 것 같고, 힘들 것 같아서 하지 않았던 일들을 그냥 해보려고 말이다. 하고 보니 그게 또 그렇게 막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변화나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42킬로를 달리고 나서 내가 느끼는 것은, 처음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달려갔던 그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하고 있다. 30킬로까지는 '이번에는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를 지나면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 같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 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본문 중-


하루키의 이런 고백이 참으로 좋았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은 마음에 위로를 느꼈달까?

아무튼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이라는 하루키의 말을 곱씹으며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프로세스를 받아들이기 위해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보려고 한다.

달리면서 계속 나의 마음에 머물러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그게 마라톤이 될지 새로운 일의 도전이 될지 아니면 신앙생활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완주할 수 있는 근육을 갖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 참 좋은 계절이다. 다치지 말고 오래오래 쉬엄쉬엄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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