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

내일 첫 10km 마라톤 도전합니다.

by 김수다

지난 5월 이직을 앞두고 아이와 단 둘이 부산여행을 갔었다. 우리는 여행 중에도 책을 읽어보자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챗 GTP의 조언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져갔다. 여행 중 완독 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두근거리게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두어 번 더 읽었는데 9월 무지개모임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아무래도 이 책과 나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나 역시 달리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 말이다.


달리기에게 보내는 나의 러브레터 <월간 에세이, 통간 495호, 2025년 7월호>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무료하고 의욕 없는 일상, 우연히 꾸준히 달리며 마라톤에 출전하는 의지의 워킹맘 이야기를 책에서 본 이후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때마침 두 달쯤 후에 동네에서 국제마라톤까지 열린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달리라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달리기에는 젬병이었다. 3주간 거의 매일 최선을 다해 연습했지만 출전 전날까지도 5km를 전부 달리지 못했다.

마라톤 당일 아침, 자고 있는 가족들이 깰까 봐 조심스레 일어나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배번호를 챙겨 집을 나섰다. 날은 흐렸고 긴장 탓인지 아랫배가 사르르 했다. Run or die라고 쓰여있는 가방을 들고 있는 청년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결지로 향했다.


가방을 맡기고 배번호를 달았다. 나는 고작 5km도 걷는 게 절반인데 하프와 10km 도전자들이 탄탄한 다리를 드러내고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위축되어 온몸의 근육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과 파이팅이라는 응원문구를 쓴 종이를 나무젓가락에 붙이고 마구 흔드는 나의 가족이 보였다. 엄마를 연신 불러대는 아이의 큰 목소리에 주변사람들이 함께 웃어주었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500m 정도 뛰고 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조금 걸었다. 그래도 마라톤이니 노력해 보자, 다시 뛰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추월한다. 역시 힘들다. 뭔가 생각을 할 만한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그저 이 무리에 섞여서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도착지가 있다는 생각에 발만 움직인다. 2.5km를 지났는데 10km 주자들과 마주친다. 나도 뛰고 싶지만 너무 힘들다. 그냥 걷는다. 그래, 걸으면 어때. 완주만 하자.

1km 정도남은 지점이 되니 응원하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기운을 받아 다시 뛰어본다. 그래도 힘든 건 여전히 힘든 것. 이제 이 코너만 돌면 되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발바닥이 뜨겁고 다리 근육이 단단해져 오는 것 같다. 심장박동소리가 머리 끝에서 터질 듯이 들린다. 입안이 바짝 마른다.

나 왜 뛰고 있는 거야, 뭘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뛴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 거야?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고, 그깟 달리기 못해도 잘만 살았는데.

그래,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목표를 세웠고 나는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해 온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 왔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27>

매일 달리면서 마음과 머리를 비워냈다. 번잡함을 버리고 나를 온전히 충만하게 채우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35>

첫 연습을 위해 러닝머신 위에 섰던 날 고작 100m도 뛰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멀리 남편과 아이가 보였다. 여전히 손수 만든 깃발을 흔들고 있다. 오롯이 나를 응원해 주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해내는 거야.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내 가족을 위해서.

저기까지 걷지 말고 뛴다면, 나는 앞으로 못할 일이 없을 거야.

나는 지금 내가 40년을 살면서 제일 못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내고 있어. 나는 할 거야. 이것만 해내면 나는 못할 게 없을 거야.

조금 있으면 달리기는 끝나.


나를 다독이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눈물이 났다. 땀과 섞여서 흐르는 눈물은 너무나 짰다. 그렇게 달리기는 끝났다. 나의 첫 마라톤 도전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하늘이다. <아무튼, 여름 하늘>​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 인생. 내일은 내가 처음 출전했던 국제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다. 내일 나는 10km에 도전한다. 지난 1년간 열심히 달렸다. 내일 나는 어떤 마음으로 달리게 될까. 아마도 중간쯤 달리다 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무사히 완주하길 바란다. 아마도 붉게 달아오른 땀으로 흥건한 얼굴로 이걸 왜 하고 있나,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다음 날 또 달리고 있지 않을까?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116>
그렇다, 마라톤 레이스는 즐기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몇만 명의 사람들이 42킬로미터를 달린단 말인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203>
다만 이거만은 꽤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설령 기록이 더 떨어진다 해도
나는 아무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목표를 향해서 예전과 같이
- 때로는 지금까지 보다도 훨씬 많은 –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227>
내일은 새로운 러닝화를 신고 마라톤에 출전할 것이다. <러닝화를 사야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묘비명에 이렇게 적겠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259>

나의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

의사, 작가, 그리고 러너

198*-20**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일 달리면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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