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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Nov 01. 2024

앙금플라워 떡케이크

feat. 시작의 이유

ENFP_

재기발랄한 활동가. 호기심 많고 자유로운 영혼.


퇴사를 고민하며 나의 인생 2막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지만,
영업 끝난 포장마차 천막처럼 축쳐지고 캄캄했다.
어느날, 호기심 장착된 눈으로 인별그램을 헤메이며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화려하게 내 눈을 사로잡는 앙금플라워 케이크를 만났다. 앙금플라워 케이크는 몇 년전 시아버님 칠순 식사 때 예쁘게 기념사진을 남기려고 주문하여 자르기 아까워하며 먹었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그때의 우아했던 케이크 보다 지금 마주한 케이크의 비주얼은 레벨이 다르다.갑자기 나도 한번 배워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호기롭게 카톡 문의하기를 눌렀다.
친절한 답변은 바로 왔는데 허헉… 클래스 비용이 상상 이상이다.
그냥 가볍게 배울 수 있는 금액이 아니구나. 하며 씁쓸히 후퇴…



몇 달 후, 은행잎이 노랗게 거리를 물들이고, 파란 하늘이 맑고 진짜 높았던 날.

진짜 퇴사의 날이 다가왔다.
퇴사 이후, 계획적인 앞날 스케쥴은 찾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만 싶었던 나.
그런 나의 머리 한 켠에 계속 생각이 나던건 앙금플라워 케이크였다.

이십 년간 쉬지 않고 일한 나를 위해 해보고 싶은 취미 하나 쿨하게 결제해 버릴까? 했더니 친구 왈, 덜컥 큰 돈을 결제하지 말고 너한테 맞을지 아닐지 모르니 내일배움카드로 먼저 학원을 다녀보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동의를 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브레이크.. 고민의 시작.

 


분주한 아침 전쟁을 치르고 남편과 아이가 나간 뒤의 집은 고요함 그 자체이다.

여유롭게 인별그램을 열어 보고 있는데 잠깐 거리를 두고 있던 앙금플라워 케이크 공방 협회에서

‘앙금플라워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순간 찌릿한 이 감정은, 나에게 어서 와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 분명했다. 재빨리 신청 희망한다는 디엠을 보냈다. 선생님도 재빨리 신청서 작성을 요청하신다.

‘그래. 직접 가서 들어보고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하면 무언가 결정에 도움이 될 거야.’

설명회를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아하게 꽃을 짜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크리스마스캐럴이 들려오면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곤 반성모드에 들어가며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시간만큼은 알차게 지내겠다고 굳은 다짐을 한다. 그렇게 쌀쌀하고도 쓸쓸한 겨울이 다가왔다.

설명회 시간을 맞춰 가려고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항상 정시도착을 고집하던 나도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 살짝 긴장이 됐는지 일찍 채비를 마쳤다.

수색동_ 버스를 중간에 갈아타고 한시간 남짓 되어 공방 앞까지 도착했다. 어? 여긴, 그???

 “도대체 왜 남편은 그걸 못 알아듣고 눈치가 없을까? 

너는 이렇게 내가 단어만 말해도 척척 알아듣는데 말이야. 호호호호~”

서로의 마을을 찰떡같이 읽어주는 절친 에스더 언니. 
언니가 종종 “우리가 서로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한 명이 저녁해서 나눠주면 한 명은 쉬어도 되고, 

아흐~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

맞다. 내 주변의 친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집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여기에 청약을 넣어서 당첨되면 단지안의 공동 테라스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밤맥주 한캔 하자는 언니.

생각만 해도 맥주 거품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은 두 명 다 똑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지만 말이다.


근데 그 아파트.
그 아파트의 상가에 내가 배우고 싶어하는 앙금플라워 공방이 있었다.
서울특별시 안에 아파트 단지가 수천 아니 수만 개 일텐데.. 이런 우연이?.
왠지 모를 신의 계시인 것 같단 느낌이 또 들면서 운명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공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있다. 인별그램에서 숱하게 지켜봐오던 익숙한 얼굴의 그녀, 나의 선생님. 

예상한대로 상냥하고, 반갑고, 따스하다. 공간은 또 얼마나 다정한지.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아기자기한 

공간에 낯선 여인들이 삼삼오오 재잘거린다. 그 모습에 난 이미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평일 오전, 사무실을 지키는 인생이 전부인 줄만 알던 내게는 이곳이 신세계였다. 같은 시간, 어떤 건물의 

어떤 작은 상가 안에는 사무실 사람들은 죽었다 깨나도 알지 못할 근사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퇴사한지도 벌써 꽤 흘러 계절이 바뀌고도 남았지만, 난 여전히 사무실 사람의 때를 벗지 못한 채 쭈뼛거리며 그 풍경 안으로 조심스러운 걸음을 뗀다.

 

‘앙금플라워 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의 시작 알림 멘트.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아이스 라떼 한모금 빨대로 쭈욱 빨아 들인다.

설명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익했고 질문시간에는 심도 있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먼걸음 해주신 참석자들을 위해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 놓은 꽃을 미니 떡케이크 시트에 간단하게 

어랜지(arrange) 해 보는 실습의 시간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이런 깜짝 이벤트에 또 심쿵하고 감동 받는 나.


실습 공간에 들어서자 봄기운 물씬 풍기는 따뜻한 컬러들의 앙금플라워 꽃들이 종류별로 뷔페처럼 접시에 

놓여있었다.

’와아~’너무 예쁘고, 꽃들을 모아 놓으니 더 예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미니사이즈 케이크에 올려질 디자인을 생각하셔서 꽃 종류와 크기, 컬러들을 매치하여 마음에 드는 꽃과 

잎사귀들을 고르시면 됩니다.”

‘엉겁결에 이게 나의 첫 케이크가 되는건데 꼭 예쁘게 해야지!’
도우미 쌤의 안내 말과 동시에 의욕이 샘솟기 시작한다.

처음 잡아보는 꽃가위도 어색하고 꽃을 짚을 때 혹여나 망가질까 우리 아들 애기 때보다도 더 조심조심 긴장한다. 고심 끝에 완성한 케이크 상자를 들고 공방 문을 나오며 쿵쾅쿵쾅 마음이 굳혀진다.


예쁜걸 만들면서 이렇게 행복한데 이 배움은 GO를 진행시켜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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