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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파이 Nov 15. 2024

마이 네임 이즈 브리엘라

어서 와, 중년에 서빙은 처음이지?

"서빙 관련 일은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그럼 계속 사무직만 하신 건가요?"

"네..............................."

마흔 넘은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단 마음을 먹기까지도 오래 걸렸지만,

어렵게 마음먹은 나를,

불러주는 곳은 아. 무. 곳. 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잔잔한 낚시터에서 물고기가 찌를 물어 물파장이 일듯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어느새 난 면접관 앞에 앉아 있었다.


아르바이트 첫 출근날 아침.

상쾌한 아침공기. 종종걸음으로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긴장하며 건물 로비에 들어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원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내가 가야 할 곳은 지하로 가는 계단.

이것 또한 낯설고 또 낯설다.

면접 때 한번 본 영양사 선생님이 반가웠고 탈의실로 안내를 해주며 옷을 갈아입으라 한다.

오-마이갓. 재킷, 블라우스, 바지에 서빙용 구두도 있다.

루즈핏과 츄리닝 스타일 흐름에 따라가느라 내 몸도 루즈핏이 되어 버렸는데 허리라인이 들어가는 재킷을

입으라니 청천벽력 머리에서 번개가 친다.

일하게 될 공간인 주방과 홀을 쓱 훑으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였다.

업무 매뉴얼, 인수인계 따위는 없다. 그냥 난 같이 일하는 선임 동료의 속사포 랩을 무작정 나의 뇌에 가득

담아 두어야 했지만 그 랩은 뇌에서 튕겨져 나가 안드로메다로 도망쳐 버렸다.


정말 대문자 P.  정리꽝 즉흥 달인.

이번 생에는 정리정돈과 친해지기 어렵겠단 결론을 내린 지 얼마 안 됐는데 수많은 종류의 식기들을 군대같이 모든 건 제자리에 두어야 하는 미션에 머릿속이 멍해진다.




"혈액형이 모예요?"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는 첫날, 팀점을 할 때 내가 매번 상냥하게 물어보던 질문이었다.

쭈뼛쭈뼛 어색하지만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친구도 있고,

이 사람 꼰대인가 라는 표정으로 한 템포 쉬었다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의 공통점은 질문에만 대답하고 더 이상의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의 난 우리 팀에는 내향형 사람들만 들어오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내가 신입 막내가 되어본 이제서야.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과의 일터에서 가벼운 수다는 사치이며 입은 저절로 다물어진다는 것을..

어쩌면 한 직장에서 수십 년을 말뚝밖고 일해왔던 나만 몰랐던 사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리더와 따르는 자. 갑과 을.

이 모든 게 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리니 절실히 깨닫게 되는구나.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 섣부른 의견은 삼가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아하고 예쁘게 담긴 음식, 인테리어가 힙한 레스토랑을 가보는 것도 좋아해서

늘 모임이 생기면 장소를 엄선해서 골라가던 성격이었다.

케이터링_ 보기 좋은 것이 맛도 좋다는 말을 백 퍼센트 공감하던 나였기에 음식 예쁘게 담는 건 나름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시작과 동시에 파김치에서 무너졌지만 말이다.

일렬로 가지런히 누워있으면 좋을 파김치가 겉절이가 된 마냥 뒤엉켜 버무려져 있다.

파김치 담기 미션은 길이 사 센티 내외, 줄기 부분을 아래쪽에 가지런히 놓고 위쪽에 파머리 부분을 얹어주는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하얀 소찬에 새빨간 국물은 왜 자꾸 묻고 엉킨 파들은 내 맘같이 뒤엉켜서 풀어지지도 않는지..

파김치와 주물럭 씨름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좀 더 속도를 내셔야 돼요'라고 경보가 울린다.

어디 가서 느리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해서 그동안 내 손이 빠르다고 착각하고 살았었나 보다.

밥 한 공기 예쁘게 담는 것도 어렵고. 동그란 테이블에 냅킨 수저 각 맞춰 세팅하는데 빙글빙글 어지럽구나.

늘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산자가 되어 보니 아이쿠. 하는 생각이 절로 나며 단순한 일 하나 처음부터 쉽게 되는 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점심시간이 다되어 입었던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서빙용 재킷으로 환복 한다.

식사를 드리며 멘트를 해야 하는데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벙어리처럼 음식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실전에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는데 직접 하려니까 소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나였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나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서비스업의 기본 중 기본이라 생각했는데

이 또한 당연하게 생각했던 걸 반성한다.


아르바이트 첫날은 정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누구의 삶을 하루 대신 살아주러 온 사람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은 5시간. 핸드폰 한번 보지 않고 최고의 집중력을 다했지만 실수투성이였다.


흔히들 결혼의 고비가 3,5,7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르바이트 출근한 지 3일 차 되던 날, 내가 이 일을 한 달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서 흑과 백이 서로 싸우고 있을 때, '그래! 이왕 시작한 거 한 달은 해야지. 한 달 버티면 세 달 도전하고,

세 달 버티면 일 년으로 늘리는 거야.'라는 백의 의견이 승리의 깃발을 들었다.


무심코 돌리던 채널에서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 백지연 앵커의 강연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버티라고 얘기하는 그 말이 흔들리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그래서 위로와 힘이 되었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 늘 내편이면 뭘 못하겠냐. 근데 세상은 따뜻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누군가 내게 독설을 할 때 꿀꺽 삼키지 마라. 부담, 상처, 엄청난 태클이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나 혼자 해봐야겠구나” - 백지영 앵커 강연 중 -


어떻게 보면 지금껏 온실에만 있어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생각 전환의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

앞으로 도전할 또 다른 브리엘라의 삶에도 첫 번째 브리엘라 경험이 분명 받침돌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마이 네임 이즈 브리엘라, 고로 난 뭐든 헤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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