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인데 우리 동네 감나무에는 아직도 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가지가 낮은 쪽부터 우듬지까지 어른 주먹만 한 주홍빛 감이 대봉시로 변신해 보기 좋은 그림의 떡 같다. 그마저도 열매가 열린 지 꽤 지나 동글동글 탐스럽던 감이 쭈글쭈글해지며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바닥엔 이미 낙화한 감이 터져 주황색 페인트처럼 번져 있고 그걸 보는 내 속도 터지는 것 같았다.
그 많던 까치와 참새, 직박구리와 딱따구리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울 사는 새들은 자연식도 버리고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 쓰레기만 찾아다니는 걸까. 상한 곳 하나 없이 단감에서 홍시가 된 걸 보니 괜스레 속상했다.
며칠이 지나 우연히 발견한 감나무 식당에 드디어 손님이 찾아왔다. 청설모와 까치였다. 특히 청설모의 자세가 요상했는데 고개를 아래쪽으로 푹 숙이고 물구나무를 서는 듯 뒷다리는 나뭇가지에 단단히 고정하고 앞다리로 감을 잡아 야금야금 먹는 모습이 묘기를 부리는 것 같았다. 감꼭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거꾸로 매달린 모습에서 중력에 대항하는 생의 의지가 느껴졌다.
청설모도 까치도 잘 차려진 감을 먹는 걸 보니 내 배가 다 부른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척 커졌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꽁무니를 눈으로 좇으며 그들의 엄마를 미루어 상상해 보는 일도, 말랑말랑한 아기였을 적 물고 빨며 키웠을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려 본다.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수유를 하는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본능처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제법 그 태를 뽐낼 정도가 되니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신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고. 육아를 해 본 적 없는 나는 그저 열 달 잘 품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귓등으로 넘겼다.
열 달을 꽉 채우고도 며칠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다. 분만의 고통은 잠시지만 모유수유의 고통은 만만치 않았다. 젖이 절로 나오고 아이 입에 물리면 되는 거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같은 옷을 입은 산모들이 우르르 신생아실에 몰려가 가슴 한쪽을 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다들 헝클어지고 기름진 머리와 맨 얼굴로 젖가슴을 드러내 놓으면서도 부끄러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팔 한 마디에 불과한 작고 여린 아기가 부서질까 봐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례차례 눈에 담아 본다. 눈 맞춤이라도 하고 싶지만 수면 상태인 아기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다. 초유는 꼭 먹이고 싶은 마음에 보드라운 발바닥을 조심스럽게 긁으며 아기를 깨워본다. 젖을 물리려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아직도 꿈속이다.
이틀 뒤 퇴원을 하고 본격적인 신생아 돌보기가 시작됐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몸소 느끼며 잠만 자는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기를 깨워 조금씩 젖을 물렸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집에 온 첫날 아기는 구토 한번 하더니 늦은 밤 분수토를 하며 온몸이 새빨개졌다. 급하게 아이를 들쳐 안고 응급실을 찾았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날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아기가 토를 했다며 장 엑스레이를 찍어 본다길래 그러려니 했다. 위에 가스만 차 있고, 장에는 별 이상이 없다며 트림만 잘 시켜달라고 했었는데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이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집에서 하룻밤도 못 자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입원 수속을 하러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남편을 허무하게 바라보며 나는 맥없이 눈물만 흘렸다.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서일까. 태교를 잘못한 걸까. 아이를 좀 더 잘 보살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제껏 살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과 죄를 떠올려보다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이전 생까지 거슬러 올라 빌고 또 빌었다.
기계음만 들리는 밝은 공간에 수십대의 인큐베이터가 있었다. 우리 아기도 아직 마르지 않은 탯줄을 달고 기저귀와 손 싸개만 한 채로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관용적 표현을 온몸으로 느끼며 만질 수 없는 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빈 겉싸개만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올 땐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이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면회할 때 만날 아기에게 줄 젖을 유축하는 것뿐이었다. 초유도 제때 먹이지 못해 미안했었다. 아기를 만나는 짧은 시간 동안 눈을 맞추고 부드러운 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태어나자마자 이별할 줄 누가 알았을까.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기를 보며 병원을 오가는 내내 눈물 바람이었다.
그렇게 초보 엄마는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아기는 다행히도 입원한 지 닷새만에 무사히 퇴원을 했다. 검사 결과 장기에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역시나 위에 찬 가스가 문제였다. 아기가 아직 빠는 법을 잘 몰라 더 신경 써서 수유해야 하고 탈수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수유 전, 후로 반드시 트림을 시켜서 위에 공기가 차지 않도록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야 했다.
아기가 퇴원하고 고민할 것도 없이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유륜까지 크게 물어야 하는데 입이 작은 아기는 유두만 문다. 내가 "아"하라고 하면 "오"한다. 젖을 빠는 힘이 세서 수유를 한 이후로 젖꼭지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고 쓰라려 한동안 고생했었다. 아기는 자꾸 젖꼭지만 물고 배부르면 잘근잘근 씹으며 논다.
모유수유 후 트림도 시켜야 하는데 젖을 먹다가 잠이 들고 트림을 시키면 금세 잠이 깨 하루 종일 젖을 물리고 지내는 것 같았다. 아기와 내가 한 몸인 것처럼 뒹굴다 보니 어느새 수유가 익숙해졌다. 어느새 누워서도 젖을 물릴 정도로 아기와 합이 맞아떨어졌다.
육아는 완성, 완벽과는 거리가 참 멀다. 이만하면 됐다고 자신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좌절을 한 아름 안겨준다. 아기는 계속 자라 발달을 하며 다음 과업으로 넘어간다. 그럼 모든 걸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또다시 실수투성이 어설픈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배운 건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겸손이었다.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 나이도 공평하게 늘어난다. 올해 엄마 나이는 열한 살. 여전히 나는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