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환 작가는 [고전이 답했다_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라는 책에 고전과 사업, 삶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한 챕터를 읽으면 머릿속에 스치는 무언가가 있어 다이어리에 메모를 해보기도 하고 블로그에 적어보기도 하고 브런치 서랍 속 글에 정리가 안된 채 저장해 두기도 하면서 한 줄 한 줄 생각을 정리한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말 그대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대로' 계속 흘러갔다
나도 그랬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치열하게 사는 게 잘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드라마를 보거나 줌마들의 수다는 쓸데없는 일이며 한가롭게 늦잠 자는 일, 여유롭게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는 일, 하다못해 운동도. 운동 하나만 하는 건 좀 비효율적으로 여겨졌다. 운동할 땐 강의를 들어야 하고 청소기 빨래 등 집안일을 할 때에도 내 귀엔 언제나 이어폰, 어쩌면 핸드폰 중독일지도 모르겠지만 여유롭게 산책하는 건 사치이고 드라마가 보고 싶으면 '운동을 하자'라고 정한 이유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책도 경제서나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만 보고 소설이나 시는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감상주의적 산물이라 생각했다.
중국어와 한자를 좋아하지만 직업은 영어 강사이다. 그러니 나에게한자는 생각을 정리하고 쉴 수 있는 휴식이자 놀이인 동시에나에게 사치이며 마음에 이상한 죄책감을 들게한다. 너무 바쁘고 내 커리어를 위해서는 영어로 된 콘텐츠를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과 쉬는 시간마저 영어를 봐야만 하는가 라는 불안, 불평이 뒤섞여 나를 힘들게 한다. [the one thing]이라는 책을 보면 중국어랑 한자는 당장 때려치워야 하는 분야가 분명했다. 그래서 그 좋아하던 한자도 그만두었었다. 지금도 난 미드를 숙제처럼 찾아다닌다. 그리고 몇가지 규칙을 세워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한다. '중드는 운동할 때에만 보자' 혹은 한자는 한주의 업무가 다 마무리되는 '특정 요일에만 보자'라는 나만의 규칙을 세워두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억누르고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효율, 쓸모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데 마땅히 살아야 했던 삶이라니.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가슴이 답답하다.
나에게 나의 쓸모는 그동안 날 지금까지 지탱해 온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생명을 잃는 것과도 같은 의미인데 그럼 이제 난 어쩌지.
무엇이 그렇게도 날 경주마처럼 달리게 만들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욕심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 칭찬받고 인정받으려는 욕심, 한 가지를 내어주고 두 개 이상을 얻으려는 욕심,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심, 남들위에 군림하려는 욕심. 난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적고 보니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러니 하나도 못 내려놓고 항상 불안해하고 늘 버스 안에서도 달리고 있지. 괜찮다. 다 내려놓아도 괜찮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의 생각들이 서로 자기주장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쪽에서는 어떻게 인간을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으로 구분하냐며 큰 소리를 내고 있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딘가에서 필요로 하고 그 재능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것이 '쓸모 있음'이며 그 이용 가치로 인해 자신의 삶의 목표나 목적이 정해지고 방향이 설계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너무도 당당하게 들이민다.
지금까지 나의 쓸모만을 증명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한 번이라도 나의 내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깊이 사색해 본 적이 있었나. 그렇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사실 내가 하는 행동이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한 몸부림인 줄도 모르면서 칭찬과 인정의 달콤함에 매료되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달려든 똥파리 같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사색하고 글을 쓰며 좀 더 내면이 단단해지고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위의 같은 책에서 고명환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우주는 나를 무엇에 쓰려고 이 땅에 존재하게 만들었는가? 우주가 반드시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다는 거다. 우주는 모든 존재가 자유롭길 원한다. 당신이 자유로워야 우주가 웃는다. 당신이 우주이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고전을 읽은 제대로 된 당신!"
생각의 방향을 외부로 돌려보자.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너무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자연이나 지구, 우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로지 내 가족, 내 일, 내 돈을 위해 생각을 출발시키지 말자. 속도는 비록 느릴지라도 내가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의 방향을 돌리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등이 바깥으로 향한 채 좁은 안만 보고 살지 않았는가. 그저 그 자리에서 뒤로 돌기만 하면 된다. 얼마든지 나의 쓸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너무 조급하게 당장 쓸모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지도 말자.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우주의 그 손짓을 알아챌 정도로만 촉각을 세우고 살자. 내 안에 잠자고 있을 거인에게 매일 책 읽고, 사색하고, 쓰면서 거인을 좀 더 성장시켜 보자. 상상 그 이상의 좋을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풀충전하고 늘 읽고 걷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