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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연 Nov 01. 2024

인도로의 비행 시작

한 달 후에 인도로 이사 간다고요?



중학교 2학년 1학기였다. 당시 전 국민 주말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며 어머니와 남동생과 여유롭게 족발을 먹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깔깔대며 TV를 보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어머니가 TV 볼륨을 낮추더니 동생과 나를 쳐다보며 말하셨다. “그동안 최종 확정 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을 못 했는데……우리 가족 모두 한 달 후에 인도로 가게 되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의 감정은 그저 당황함, 황당함 그 자체였다. 곧 기말고사 기간이라 시험 준비를 서서히 하려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한 달 후 인도로 가게 될 거라고 하시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4살 어린 동생은 다른 나라라는 개념조차 익숙지 않았기에 그냥 놀러 간다는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에게 인도가 아주 생소한 나라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우리보다 앞서 인도에 해외주재원으로 나가기 위해 몇 년 간 무던히 노력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아버지께서 인도 해외주재원 발령이 나신 적이 있었다. 당시에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음식 이것저것을 사서 냉동고에 준비해 두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회사 사정으로 아버지의 해외주재원 발령이 무산되었고, 아버지는 몇 달을 낙담과 우울의 동굴에서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하셨다.



내게 한국만큼이나 친숙한 인도 지도



4년이 흘러 또 한 번의 해외주재원 발령의 기회를 얻으신 아버지는 이번에는 최종의 최종 확정이 날 때까지 우리에게 인도에 가게 된다는 것을 비밀에 부치었다. 그리고 내가 인도에 날아가기 한 달 전 그제야 가족 모두가 인도에 가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신 것이다.


당시 나는 중학교에서도 전교 1~5위 사이에서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공부 성적이 좋았다. 다음 학기 전교 1등을 목표로 잡고 공부를 하던 나에게 이렇게 가는 것이 정말 맞을 까라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당장 코 앞에 있던 기말고사는 편하게 쳐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좋기만 했다. 이미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한 달이 채 안 남은 기간 동안 나는 영어공부에 더 박차를 가하였다. 특히 인도에 있는 국제학교로 전학하기 위해서는 영어시험을 봐야 했기에, 범위도 없는 영어시험을 대비하고자 speaking이며 writing이며 이것저것 벼락치기로 공부했었다.


그리고 당시 내게 정말 중요했던 것 한 가지가 있다. 영어는 '뭐 가서 많이 쓰다 보면 늘겠지'라는 마음으로 큰 걱정이 없었던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바로 한국 TV프로그램을 못 보는 것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아이돌에 빠져 있었고,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한국 예능 보는 것이 낙이었다. 지금에야 해외에 가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쉽게 한국 TV프로그램을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었다. PC로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야 했는데,  인도는 컴퓨터 속도가 느리다 보니 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는데 무려 7시간 정도가 걸렸다. 자기 전에 프로그램 다운을 누르면 다음 날 아침에서야 완료가 되었다. 그래서 인도로 가기 전 날까지 나는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수많은 녹화비디오들에 열심히 다운로드하였다.


스마트폰도 없고,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던 시절에 대해 이렇게 적어보니 나이가 굉장히 많은 듯해 보이지만...(어머니대 나이는 아닙니다^^), 나도 어른들처럼 이야기해 보자면 컴퓨터며 스마트폰이며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준비했던 비디오 녹화 테이프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한 달 안에 집이며, 학교며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인도로 건너갔고, 이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약 5년 간의 인도, 뉴델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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