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어도 이븐 하지 못한 우리 사이
이럴 거면 왜 결혼했어? 애는 왜 낳았니?
결국 터질 게 터져버렸다. 참고 참다 참나무가 될까 봐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일까 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다 토해냈다. 욱해서 시작했지만, 말하고 나니 생각보다 후련했다.
우리 집 남편에게는 한 달에 한 번 외박권이 있다. 그 이유는 캠핑을 너무 싫어하는 나와 캠핑을 너무 사랑하는 남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너무 좋아하고, 한 사람은 너무 싫어하고. 매번 캠핑 때문에 싸우다 보니, 그냥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 달에 한 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 없는 저녁은 생각보다 편했다. 같은 국을 세 번은 안 먹는 남편이 없으니 저녁 메뉴 걱정도 없고, 소파와 한 몸으로 누워 핸드폰 하는 남편이 시야에 없으니 복장 터질 일도 없었다. 그렇게 외박권이 생긴 지 1 년이 넘어,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만족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전업맘에서 워킹맘이 되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외박권은 내 안에 화가 쌓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은 신나게 캠핑을 갔고,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는 것이 1박 2일 온전히 내 몫이 되니 힘에 부쳤다. 하지만 내가 제안한 한 달 한 번 외박권이니 무르자 하기도 그래서 참고 또 참았다. 한 달에 한 번인데 뭐 이런 심정으로.
하지만 그는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었다. 외박권을 쓰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었을까?
“나 이번 주도 캠핑 갔다 와도 돼?”
이게 말이야 방귀야. 듣자 듣자하니 정말 어이가 없네. 이 말은 불쏘시개가 되어 그동안 참고 참던 화를 단숨에 일으켰다.
“지난주에도 다녀왔잖아. 그런데 또 간다고?”
“또 가고 싶으니까 그렇지. 한 달에 두 번 안 돼?”
“한 달에 두 번은 너무 많지 않냐?”
“나도 좀 쉬고 싶으니까 그렇지. 나만의 시간도 필요해.”
“뭐? 나만의 시간? 그럼 혼자 살지 그랬어. 이럴 거면 왜 결혼했어? 애는 왜 낳았니?”
그날 그는 나의 분노 버튼이었다. 존재만으로도 화를 일으키는, 나의 분. 노. 버. 튼.
그동안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차마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던, 여태 한 이불 덮고 잔 정을 생각하며 하지 말자고 했던 말들을 그 자리에서 다 퍼부었다. 참는 것이 어려웠지만, 한 번 쏟기 시작하니 돈 쓰듯 쉬운 일이었다. 말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할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단 1초도 쉬지 않았다.
처음엔 놀라 가만히 듣던 남편도 열이 받았는지 말꼬리를 잡기 시작했고 갈수록 의도와 다르게 이야기는 먼 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아무 말 대잔치. 결국 듣다 지친 내가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 만 하 자.
그 뒤로 우리는 서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결혼 10년이 넘으니 없는 사람처럼 생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투명인간으로 지낸 지 일주일이 넘어가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지내는 것도 우리의 싸움 루틴이 되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했는지를 따지자면 또 도돌이표 같은 싸움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에너지도, 마음도 없었다. 무엇보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답이 없는 싸움일 게 뻔했다.
너는 너, 나는 나.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우리는 이심동체다.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합쳐질 레야 합쳐질 수 없는, 너무 다른 인격체라고.
오늘도 나는 참고 인내한다.
고로 우리 결혼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