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만 강력한 한 방
"자기야! 밖에 아래 좀 봐봐!
나 쟤 때문에 정말 못 살겠어!"
주말 아침, 아빠한테 크게 혼난 아홉 살 둘째 슈니가 뾰로통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대체 어딜 가나 싶어 베란다 창을 슬쩍 내다본 순간,
나는 그만 놀라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집 앞 공터 흙바닥. 슈니는 거기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발끝으로 아주 열심히 뭔가를 쓰고 있었다.
"아... 빠..."까지 글씨가 만들어졌을 때는 살짝 감동의 기대에 부풀었다.
'아빠, 미안해요‘ 를 쓰려는 걸까? 아이가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깜짝 이벤트라면 나름 귀엽지 않은가!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툭 내뱉었다.
"아니지, 아마도 '아빠 미워'겠지.“
남편과 나는 몰래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만 슬쩍 내민 채, 아이의 작은 발끝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 완성되어 가는 글씨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문장은 이랬다.
"아.빠.는. 나.쁘.다. (지우지 X)"
우리는 그걸 보고 마주 본 순간 동시에 터져버렸다.
“풉!”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저런 생각을 했다는 아이다운 발상도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났다.
"영화 보면 아들이 하얀 눈 밭에 '아빠 사랑해요!' 적어주던데… 우리 아들은 참 기가 막히지 않냐?“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만약 슈니가 아빠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나서, 펑펑 울었거나 말대꾸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바로 헤아려주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발로 새겨진 큼지막한 글자가 말하는 소리 없는 외침을 보니, 묘하게 마음 한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풀어보려 했던 아이가 짠했다.
조금 뒤, 슈니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와 자기 방 침대에 푹 엎드렸다.
남편이 슬그머니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슈니야, 아빠가 그렇게 나빠?"
슈니가 고개를 휙 돌려 남편을 쳐다봤다.
그리고 아빠의 미소를 보자 그제야 안심한 듯 아이도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