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즐기는 방법 2가지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내가 처음 와인을 마주하게 된 곳은 대학교 주변 와인바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20대 때 여자친구와 분위기 있는 데이트를 위해 방문하였던 그 와인바의 메뉴판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하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와인의 가격뿐이었다. 용기를 내어 소믈리에게 추천을 구하면, 소믈리에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혹시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세요?"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평소 여러 가지 지식을 책으로 접해본 사람 아닌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위트한 와인보다는 드라이한 와인으로 추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 소믈리에도 사실상 나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가격 레인지에 대한 질문을 위주로 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또 누구인가. 체면이 있지 않나.
기껏 여자친구와 분위기를 잡기 위해 와인바를 방문했는데, 가장 저렴한 와인을 주문하기에는 체면이 구겨진다. 그렇다고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면 부담스럽다. 큰맘 먹고 소믈리에게 주문한다. 가격 순서대로 기재되어 있는 메뉴판의 가장 하단에서 두 번째 와인을 고르며 말한다.
이 와인으로 주세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그 가게에서 두 번째로 저렴한 와인을 주문한 것이다. 이른바 가성비 와인이라고 믿으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주문했던 그 와인들은 와인바에서 판매가 10만 원이 넘었지만, 소매가로 봤을 때 그 당시에도 1만 원 정도의 가장 저렴한 와인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와인이 대중적으로 낯선 술이다 보니, 사실상 부르는 것이 가격이었고, 정보가 없었던 손님이 이를 판단할 기준도 없었다.
문제는 그 와인들의 퀄리티가 객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차라리 소주를 마시면 알코올 향 정도만 견디면 기분 좋은 취기가 올 수 있는데, 저렴한 가격대의 품질 낮은 와인에서는 알코올이 튀는 것은 물론 기분 좋지 않은 다른 향(이산화황, 싸구려 오크 냄새, 물 썩은 냄새)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내 경험을 토대로 와인에 관심이 있는 와린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와인을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우선, 와린이라면 굳이 처음부터 와인바를 방문하기보다는 우선 집이나 콜키지 프리 식당에서 과감히 소매가 10만 원 이상의 나름 유명세 있는 와인을 선택해서 그 와인에 온전히 집중해 보고, 함께 있는 사람과 그 향에 대해서, 또 음식과의 마리아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다면 어떨까? 와인의 매력이 온전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그 술자리는 주제가 있는 자리가 될 것이고 이야기의 주제는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또한 3만 원 미만의 테이블 와인이라도 음식과 함께 즐긴다면 즐거울 수 있다. 적당히 드라이하면서 미디엄 정도의 바디감이 느껴지는 레드와인을 붉은 육류와 함께 즐기거나, 날카로우면서도 짠내가 살짝 나는 샤블리 화이트와 해산물(특별하게 그 유명한 샤블리와 굴의 조합)을 함께 즐겨보면 그 자체로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짜장면과 살짝 당도가 느껴지는 리슬링의 조합? 그 궁합이 맞든 맞지 않든, 경제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와인을 식사에 동반한다면 그 시도 자체로 즐겁다.
와인에 흠뻑 빠져 수년을 보내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와인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