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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송 Nov 05. 2024

죽음 후에 오는 것들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어디에 묻어줄까?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돼?

천국과 지옥이 진짜 있어?

엄마가 먼저 죽으면 난 어떡해?

6-7세 때부터인가 섬세한 아들은 죽음에 관한 질문을 시작했다. 죽은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턴 다소 섬뜩한 얘기도 더해진다.   

“엄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F인 아들은 상상력도 풍부해서 백이면 백 이런 대화는 늘 눈물의 앤딩.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육아책을 찾아보니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란다. 그래서 엄마는 마치 T인척 최대한 담백하게, 조금은 유쾌한 답을 주기로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거야. 피할 수가 없어. 엄마 아빠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가겠지. 근데 지금 지호는 엄마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 아들 다 클 때까지 오래오래 옆에 있어 주려고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 거잖아. 오래 살려면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도 먹고 잠도 잘 자야 해. 구구절절. 사심 가득한 엄마의 결론은 '잘 때 깨우지 말아야 한다'로 마침표를 찍는다.




한동안 이 주제가 우리의 대화에서 뜸해졌을 때쯤, 원인 모를 가슴 통증이 나를 찾아왔다. 생각보다 심각해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에 괴로웠고, 몸을 살짝이라도 움직일 때는 가슴부터 부여잡아야 했다. 여러 병원과 검사를 거쳐 결국 찾아낸 가장 유력한 병명은 갈비뼈 염증. 평소 잘 아프지 않았던 엄마가 숨 쉴 때도 아프다 하니, 아들은 이러다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나의 친구, 지호가 잘 따르던 이모의 어머니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 같이 눈물을 글썽이던 지호는 엄마 잃은 이모의 슬픔을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그렇게 아들의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호의 궁금증이 조금 더 현실적이고 디테일해졌다는 거. 장례식이 뭔지, 며칠 동안 하는 건지, 장례식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돌아가신 분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나는 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해주었다.      




지속되던 통증이 옅어져 가던 어느 봄날, 지호와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었다. 생각도 못했던 질문이 훅 치고 들어온다.      

"엄마는 나중에 어디 묻어주면 좋겠어?"

갑자기? 이렇게 또 시작인 건가.

"엄마는 땅에 묻지 말고 태워서 나무에 뿌려줘. '엄마 나무'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네. 이거 좋을 거 같지 않아?" 하며 옆을 쳐다보지만, 아들은 아무 말이 없다.  

"왜 그래? 생각하니 또 슬퍼?"

"아니, 어떤 나무가 좋을까 생각 중이야."     

뼛가루를 아무 나무에다 뿌리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아들의 심각한 얼굴에 속으로 더 크게 웃는다. 한참을 아무 말도 안 하고 걷더니,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는 지호.

"아 생각났다! 그라츠 앞 나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폭죽이 터지고, 본능적으로 아픈 가슴부터 부여잡은 나는 이내 배꼽도 잡아본다.  

그라츠라면 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단골 커피숍인데,  그 카페 앞에 나무가 두 그루 있긴 하지.

근데 왜 하필 그라츠 나무일까?

"엄마가 그라츠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아들의 대답이다.

"그렇지. 그렇지. 엄마가 너무나 좋아하는 곳이지. 엄마 죽어서도 매일 가라고 그런 거구나. 하하하. 이거 너무 기발한데. 고마워. 정말 고마워."



카페 안에서 바라본 그 엄마 나무



살아생전 제일 좋아하는 카페 앞에 엄마의 유골을 뿌려준다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닌가. 아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이에 질세라 나의 장난기도 발동한다. 내 앞에 있는 이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또 다른 약속도 슬쩍 얹어볼까.

"그럼 너 가끔은 커피도 사서 뿌려주기다?"      

새끼손가락과 엄지 도장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아들은 주산을 하러 들어간다.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엄마가 애정하는 장소를 기억하는 것도 놀랍고, 그곳에서 죽은 엄마를 기리려는 것도 대견스럽다. 더 다행인 건 언젠가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만큼 컸다는 사실. 코끝이 시큰하다.




단, 감동은 거기까지만.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그날 이후 아들은 계속 나무를 찾아다닌다. 마치 양지바른 곳 묫자리를 보러 다니는 어르신마냥. 길을 가다가도 버스 안에서도 눈에 띄는 나무만 보이면, "엄마 이 나무 괜찮지 않아? 여기 뿌려줄까?"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가. 물론 앞 뒤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부끄러움은 그저 엄마 몫.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정말 카페 앞이나 아름드리 가로수에 뿌려줄 기세라 이제 수목장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어야겠다. 수목장을 할 수 있는 장소와 나무는 따로 있단다. 아들.




엉뚱하지만 빛나는 아들.

커피 냄새나는 엄마 나무.

언젠가 때가 오겠지.

정말 이별해야 할 때.

이 날의 대화를 기억하길 바라.

우리 이따 커피나 한 잔 하러 갈까?

넌 핫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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