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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은 시간을 되살린다

시속 40km의 삶에서 깨어나는 법

by 민송


10대는 시속 10km,
20대는 시속 20km,
30대는 시속 30km ,
40대는 시속 40km,

그리고 70대는 시속 70km.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우스갯소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시속 40km로 달리고 있는 40대가 되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꾸물거리는 여름을 밀어내는 요즘,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도 빠른 속도감이 묻어난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이러다 돌아서면 또 연말이겠죠."


하루하루는 더딘 것 같아도, 돌아보면 어느새 한 달, 일 년이 훌쩍 지나 있다. 누군가 우리들의 시간에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이렇게 달라지는 인생의 체감 속도.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같은 한 달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의 시간은 왜 더 천천히 가는 것만 같을까?



새로운 상황은 정신적 소란을 가라앉혔고, 새로운 환경은 현존과 몰입 상태에 나를 몰아넣었다. 앞으로 닥쳐올 일이 무엇인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빨리 가기로 몰아가는 삶의 몽환상태를 깨뜨린다. 새로움은 심지어 우리의 시간 감각을 늦춘다. 어린 시절에 시간이 더 느리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릴 땐 모든 것이 새로웠고,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있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의 원리>>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동일한 시공간을 더 짧게 느낀다. (...) 성장기에는 하루의 모든 순간마다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불안은 생생하게 다가오고, 기억력은 왕성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추억들은 신나는 여행에서 아쉽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그러하듯 세밀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경험들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적인 일상이 되어 기억 속의 나날들이 밋밋해지며 내용 없는 단위가 되어가고, 그 시절은 점점 더 공허한 것이 되어 흩어져버린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 중 P.107



"엄마, 그거 알아요?"

아들의 수다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다른 집 아이들은 질문이 많이 한다면, 우리 아들은 그냥 말하는 걸 즐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부터 어제 있었던 일들, 그리고 유튜브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들의 눈과 귀와 입은 하루 종일 바쁘다. 놀이터에서 개미 관찰하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는 아홉 살. 이야기 책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책을 더 좋아한다. 아들에게 세상은 알고 싶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발견과 경험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아이의 하루는 옆에서 보아도, 뒤에서 보아도 꽉 차 있다.


반면, 우리 어른들의 하루는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등원을 시킨다. 빨래와 청소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 대충 식사를 하고, 외출을 하거나 마트에 다녀오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다. 아이와 지지고 볶다 보면 저녁이 되고, 밥을 먹고 치우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의 내 일상이 그러했다.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던 일상은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한 줌 모래를 손에 쥔 채 흘려보내듯, 하루가 스르륵 빠져나가버렸다. 그런 하루가 금세 일 년이 되고, 이 년이 되었다.


너무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뇌는 쉽게 '몽환' 상태에 빠진다. 자동 조종(autopilot ) 혹은 몽유병(sleepwalking) 모드라 불리는 것처럼, 별 다른 의식 없이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이스터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움'과 '불편함'이라고 말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적응하기 위해 몰입할 수밖에 없으니까.


의도적으로 새로움과 불편함을 더 하면 우리는 몽환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책을 읽고,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


나 역시 어느 날 문득,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환 상태에서 깨어나고 싶었나 보다. 허리가 아파 운동을 슬쩍 끼워 넣었더니 통증이 줄었고, 덕분에 내 오전이 길어졌다. 작년 이맘때엔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독서모임도 시작했다. 덕분에 일 년 동안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하루가 길어졌다.


매달 새로운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경험. 글감을 고민하는 시간들. 마이클 이스터처럼 극한의 야생으로 나가지 않아도, 작지만 새로운 뭔가를 내 삶으로 들이면 우리의 시간은 되살아난다.


몇 달 전, 매일 먹던 메뉴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서 '집밥 수련 챌린지'에 참여해 보았다. 편리함을 내려놓았다. 전자레인지 대신 찜기를 꺼냈고, 육수 코인 대신 손수 멸치육수를 우려냈다. 시간이 더 걸리고 훨씬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과정이 신선했다. 새로운 놀이 같았다. 낯선 요리를 위해 생소한 재료를 고르고, 익숙하지 않은 조리법을 시도하던 그 모든 과정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모든 걸 하다 보니 휴식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친다. 들쭉날쭉하던 감정의 기복도 제법 안정된 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시작한 지 벌써 일 년. 이번 일 년은 여느 때와 다르다. 적어도 누군가 내 시간만 훔쳐간 것 같은 느낌은 이제 없다. 알이 꽉 찬 밤송이 같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루가 스르륵 사라지던 삶도, 의도적으로 새로움과 불편함을 선택하면 분명 달라진다. 작지만 낯선 시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몰입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하루를 길게 살 수 있다.


시속 40km로 달리는 지금의 삶 속에서도, 깨어 있는 하루는 여전히 길고,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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