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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송 Oct 24. 2024

모두가 임윤찬이 될 수 없어!

본질에 성실함을 더할 때

"선생님! 졸업하면 뭘 해야 하나요?"

레슨을 마친 제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순간 내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다. 솔직히 나도 모르는 걸 어쩌겠나.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답을 모르긴 마찬가지니까.


'글쎄, 뭘 하면 좋을까...'     



어릴 때부터 쭉 이 길만 걸어왔을 아이일 텐데,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는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음대생에겐 평범한 일이다. 차라리 공부했다면 선택권이 더 많았을까?


실력이 대단히 좋아서 전문 연주가로 나가거나 대학교수 혹은 예술가로서의 꿈을 가질 수 있다면 나의 답변도 망설여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성실하지만 실력은 어중간한 아이에게 더욱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었지만, 정답 같은 조언이 떠오르지 않았던 건 나 또한 공부를 마치고 갓 귀국해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초보 선생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꿈이 있었다.

어릴 땐 멋진 피아니스트, 대학 이후엔 강단에 선 좋은 선생님 소위 말해 '교수'.


좋아해서 시작한 일에 꿈이 생겼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나 이름값이 중요시되는 현실 앞에서는 어떤 꿈은 보잘것없어지고, 어떤 꿈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된다. 그래도 쉽게 발길을 돌릴 수 없는 건 이 일이 좋고, 다른 길에서도 이상과 현실의 타협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 모두 ‘임윤찬’ 같은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할까?

왜 모두 ‘한강’ 같은 작가를 꿈꿀까?     



나 또한 커다란 무대 위 연주가 끝나고 터져 나오는 박수와 앙코르를 받는 화려한 피아니스트를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매일 감옥 같은 연습실에서 빈 의자를 청중 삼아 굳은 손끝이 물러질세라 연습하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많은 학생이 자연스럽게 화려한 무대와 큰 박수를 꿈꾼다. 그 중심에는 임윤찬 같은 젊고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의 성공은 많은 이들에게 목표이자 이상이 되고, 무대 위에서의 찬사와 명성은 피아니스트로서 이루고 싶은 꿈처럼 보인다. 누군가 날 알아줄 때만큼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있을까?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임윤찬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작가가 한강처럼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세계적인 건 고사하고 국내에서 이렇다 할만한 예술가가 되기도 결코 쉽지 않다. 그들에게도 목표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단지 목표만을 위해 매일 열 시간 연습하고,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글을 매일 쓸 수 있었을까?





결국 본질이다. 누군가가 들어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음악은 청중의 수나 명성만이 음악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청중이라도 그들이 내 음악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것이 곧 음악의 성공이자 ‘소통’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는 길 일 거다.


하지만, 현실에 놓인 많은 음악학도는 그런 본질을 고민할 새가 없다. 투자한 만큼 아웃풋을 내야 하고, 잘하면 잘할수록 경쟁이 경쟁을 부르는 구조 속에 놓이니 말이다. 타인이 인정하는 이름값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본질을 고민하는 것이 구차한 변명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현실은 한순간에 본질을 잊게 한다.


성공의 기준을 오직 명성이나 화려함에만 둔다면, 자신만의 여정을 걸어가며 느끼는 작은 성취들은 너무 허접하고 초라한 것들이 되어버린다. 인정받는 작가의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대가의 연주가 모든 이의 마음을 울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음악이 세계를 뒤흔드는 명작일 필요도 없다. 임윤찬이라는 이름은 특별하지만, 그 이름만이 음악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 속의 작은 무대들, 소소한 연습 속에서 피어나는 성취감 역시 너무나 소중한 결과물이다.      






음악은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발견하는 여정에 가까운 것 같다. 누군가는 커다란 무대에서 빛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박한 자리에서 마음을 나누기에 그 모든 여정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음악.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며 걸어가는 것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일 거다.




임윤찬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길을 걸어가는 자체가
음악가로서 정말 멋져.
부족하게 느껴지는 너의 음악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음악이야.
그게 바로
우리가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음악은 누군가를 위로한 적이 있었을까?



건반 밖 엄마,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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